The Economic Walk by Joo Money

‘The economic walk’ with reporter, ‘Joo Money,’ from RGO 24… He picked up a pen and began to write to testify for God’s Providence history through economics by becoming a living book of economics. Would you like to walk with the Lord on Heaven’s beautiful, mysterious economic walking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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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끝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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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꽤 어수선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영국의 브렉시트 등 국제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일본의 경제보복, 북한과의 관계 교착, 여야의 강대강 대립 등으로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정세가 흐를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바야흐로 현재를 ‘전환기’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비단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 조직의 경우에도 항상 전환기는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일생으로 치면 사춘기, 결혼 등이 전환기가 될 수 있고, 조직으로 치면 CEO가 교체된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에 접목되는 시기 등이 전환기일 수 있다.


전환기와 관련하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패러다임 전환’이다. 과학자 토머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사용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일시적으로 패턴을 부여하는 ‘과학적 업적’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말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훨씬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패러다임과 관련하여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패러다임에 뛰어난 설득력과 설명력이 있어 그 시대의 난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천동설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는데, 지동설이 등장하기 전 천동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주론의 뛰어난 모델로 채택되어 거의 모든 사람을 납득시켜왔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헤겔이 말한 ‘변증법’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진리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인데, 대립하는 사고를 서로 부딪쳐 투쟁시킴으로써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변증법은 진리 탐구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 발전을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즉, 어떤 사회 형태가 있다고 하면 그것을 부정하는 다른 사회 형태가 제안되고, 결국에는 양자의 모순을 평정하는 형태로 이상적인 사회가 제안되는 것이다. 헤겔은 그렇게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경우 기존의 패러다임과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커녕 문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조차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패러다임 사이에는 우열을 가리기 위한 공통된 기준이 없는 것이다. 쿤은 이것을 ‘공약 불가능성’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결국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느 한쪽의 패러다임을 신봉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전부 멸절하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토머스 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를 설득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빛을 보여줌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자가 멸종하고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여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질 때에 비로소 승리한다.”


대표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그가 죽은 후 1세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위의 말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만큼 패러다임의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한편, 사회 심리학의 창시자인 쿠르트 레빈(Kurt Lewin)은 개인 또는 조직의 변화가 실현되는 것을 ‘해동-혼란-재동결’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친다고 말했다.


제1단계 ‘해동(unfreezing)’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바꿔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제2단계 ‘혼란(moving)’은 예전에 갖고 있던 견해와 사고, 또는 제도와 프로세스가 불필요해지면서 혼란과 고통이 생기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예정대로 원활히 진행되지 않아 “역시 예전 방식이 좋았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마지막 제3단계는 ‘재동결(refreezing)’로서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결실을 이뤄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끼게 되어 변화를 받아들이고 유지하려는 항상성 감각이 되살아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프로세스가 첫 번째 단계인 ‘해동’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해동은 ‘끝’의 의미를 담고 있다. 대개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앞으로의 일을 ‘시작’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쿠르트 레빈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방식을 잊는 것, 즉 이전 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전환기는 무엇인가가 새로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 끝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무언가가 끝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정명석 목사님은 현재가 전환기라고 말씀하셨다. 전환기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 위해 옛 시대를 마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향후 무엇이 끝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전환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같은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산을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의 전환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면, 우리는 무엇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지난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끝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옛 습관과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하고, 민족적인 차원에선 과거사의 잘못을 완전히 끝내야 한다. 전환기에 담긴 함의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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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9/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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