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_설교말씀

인생의 삶과 영원한 길, 자기 몫이 있다

본문 .

[본 문]

요한복음 14 : 1 - 6,  14 - 15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을 보겠습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시듯이, 이 시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하시 는 말씀이니 귀를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근심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또한 자신들 도 근심하지 아니함으로 애간장을 안 태우며, 속을 안 썩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지고 사는 자들도, 없는 자들도, 10대들도, 청년들도, 어른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근심·걱정·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현실과 앞날에 대해 서, 더 나아가서는 하늘나라가 정말 있는지, 자기는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별의별 걱 정과 근심들을 다 합니다. 그런 자는 쉽게 늙고, 마음에 병이 들고, 육신의 병까지 들게 됩니다. 주님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순종하는 것이 곧 고치는 약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보낸 나 예수를 절대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주님을 안 믿으면 절대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듯이 삼위일체가 되시 는 주님도 절대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약해서 무엇을 해 주시지 못한 일은 없습니 다. “믿어라.”말씀하심에 따라 의심 없이 믿기를 축원합니다. 


의지는 믿음에서 옵니다. 믿음에 따라 의지가 생깁니다. 절대 믿음으로 절대 의지하 게 됩니다. 믿음에 따라 구원도 달라집니다. 의지가 강할수록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 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인생에게 큰 힘입니다. 굳건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이 아닌 메시아이니 절대 믿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구원 받는데 있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은 잘 믿습니다. 자기의 어떤 문제를 두고 주님께 기도하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절대 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안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가 어렵게 되면 ‘내가 할 일이야.’ 하고 자기가 하려고만 합니다. 주님을 절대 믿고, 절대 의지하고, 절대 해 주실 것을 믿고, 근심하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믿고 살았는데 안되었다고 낙심 말고 끝까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얻는 길’입니다. 삶 속에 고통·염려·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주님이 그 뜻대 로 해 주실 것을 절대 믿고 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을 보겠습니다.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서‘처소’는 영원히 거할 수 있는 하늘나라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처소, 곧 각자의 집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실 처소를 직접 만들러 가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에도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과 같이 “약속대로 너희를 위해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고 그 책의 저자를 통해 확실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자세히 책을 쓰게 하였습니다.


이미 우리도 전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아는 바이지만 천국은 큰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8장 5절을 보면, 땅에 있는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며 그림자 라고 했습니다.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세상에도 사람마다 자기 집이 있듯이 천국에도 각자 집이 있습니다. 세상의 집은 돈 을 주고 사기도 하고 자기가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집은 그 사람의 공적에 따라 주님이 약속대로 예비하여 지어 놓으십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을 아시고 뜻 을 아시니 그에게 맞게 100% 마음에 들게 지어 주십니다.


세상의 집은 돌, 철, 시멘트, 흙, 나무, 벽돌로 짓지만 하늘나라는 금과 각종 빛난 보석으로 집을 짓습니다. 세상의 집처럼 값이 없고 빛도 나지 않는 허술한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이 없습니다.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에 살 정도의 사 람은 아예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행한 대로 준다」는 말씀대로 주십니다. 금보다 못한 나무 집이나 돌집이나 흙집 을 지어서 주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천국도 빈부의 격차가 있는 세 계가 되고, 천국 같지 않으며, 그 세계의 일부는 이 세상과 같을 것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의 보석 집과 같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빛나 고 찬란하게 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 영이 빛이 나서 천국에 가야 됩니다.“천국은 가 봐야 알지…”하고 말하는 사람도 못 간다고 봐야 됩니다. 호리라도 문제가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의 모든 삶을 하늘나라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바울 선생은 하늘나라에 대하여 보고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라.”고 했습니다. 또 “나는 날마다 주를 위해 죽노라.”하고 말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못된 성격과 성질을 죽이고, 혈기와 악한 마음을 죽이고, 세상으로 가는 마음을 죽 이고, 육성을 죽이고, 사람의 생각을 죽이고,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고 하 면서 모두 그같이 살라고 했습니다. 


제 성질대로 살고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한 명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자기의 육과 영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육신이 죽으면 육체만 땅에 남고 하늘 나라에 못 가는 것이지, 그 마음과 생각은 세상에서 행했던 행실 그대로 자기 영체 가 하늘나라에 가져갑니다. 고로 완전히 회개하고 완전히 의를 행하여 천사의 마음과 주님의 성품과 어린아이 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을 갖지 못하면 그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메시아로만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대 로 절대 순종하여 화평케 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하고, 참고 견디고, 의를 행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됩니다. 땅에서도 육신을 가지고 주 안에서 천국같이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땅에서 천국이 거의 좌우됩니다. 주님은 “땅에서 뜻이 이루어져야 하늘나라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주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 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살아야 된다.」 


성경을 보면 천국에 갈 자들의 기준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일반 책 읽듯이 그냥 읽기만 합니다. 세상의 책들은 지식과 상식을 써 놓았고,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써 놓았습니다. 


성경은 인생들의 영원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생을 구원하 시는 메시아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며, 천국을 어떻게 찾아오는지에 대해 말씀하 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명대로 사는지 말했고, 수한 전 에 죽는 하늘의 뜻있는 자에 대해 말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또 지옥은 어떤 자들이 가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선지 자들을 통해,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확실히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은 하나님과 주님의 음성과 같이 귀히 보고 읽어야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천국에 집을 예비해 놓으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영접하여 하늘나라로 데려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온다’는 말은 주님이 꼭 재림하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날이 아주 가깝다고 했 습니다. 그 날과 그 시는 몰라도 주님께 기도하면 어느 정도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 게 될 것입니다. 


성경뿐 아니라 직접 천국을 구경시키고 책을 쓰게 한 자들을 통해 주님이 지금 이 시대에 제일 급히 하고 싶은 한마디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느 정도인지 말하면, 마치 해산하는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가 되어 더 이상 거동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는 정도와 같이 임박했다는 말 씀으로 표현되었습니다.(살전 5:3)


세상에는 항상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징조가 보입니다.


지금은 지역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징조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은 항상 계시나 징조를 보일 일이 있으면 보여주십니다. 여러분들은 징조들을 보았습니까? 하나님도 주님도 계획적으로 징조들을 보이시는 데 사람들은 답답하고 무지하게 생각해 버립니다. “계절에 따라 태풍이 불었구나.”, “지구 온난화 현상이야.”, “요즘 같은 때는 모두 돈을 사랑하니 경제 흉년이 들고 가뭄이 든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두 징조들입니다. 


마태복음 16장 3절을 보면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어찌 징조는 분별하지 못 하느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징조는‘예비하라’는 뜻입니다. ‘피하라’는 경고입니다.


모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살전 5:1-6)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해산하기 전에 산모는 아픔과 고통이 와서 괴로워합니다. 임신했을 때의 고통은 많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고통, 몸이 무거운 고통, 배가 나오는 고통 등 여러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태 속의 아이가 나오려 움직이고 방향을 트니 아픈 고통이 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오실 때도 세상의 징조 로 인하여 세상 모든 자들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 자들은 직접 고 통을 겪게 됩니다.


주님은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오시지, 절대 뒤바뀌어서 오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 로 오시지, 천둥 번개를 치면서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시 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대로 오십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불고 그 나팔 소리를 듣는 자들만 알고 주를 맞을 것입니다.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 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성경에 하나님과 주님이 말씀 하신 것은 꼭 이루어집니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절대 믿고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려고만 하면 안됩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통해 깨닫고 듣게 됩니다. ‘회개하라.’, 혹은‘기뻐하라.’, 혹은 오늘 말씀처럼 ‘근심하지 말라.’, 혹은 ‘형제를 사랑하라.’하며 자기 마음 상태와 행위에 따라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이 말씀은 30개론 중에서 계시론에 나옵니다. 배우기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오는 계시는 문학적 계시요,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 주님 의 음성을 듣는 것도 특별계시에 속합니다. 어느 때는 만물을 자세히 보면서 성경처럼 보고 행할 때 만물로도 들려옵니다. 만물은 인간을 중심하여 실체로 존재하게 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개체이며 하 나님의 창조 작품입니다. 만물은 자연계시를 보일 때 사용합니다. 어느 때는 꿈을 통해 보이며 깨닫게 해 주십니다. 환상·이상·비몽사몽간에 보이는 것은 초자연적인 계시입니다. 주님이 직접 환상이나 꿈으로 안 나타나도 상징적 으로 다른 자로 나타나 어떤 상황을 보이며 말씀하여 깨닫게 해 주시고 사라지기도 하십니다. 


재림에 대해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해 놓지도 않은 자들이 세상에 나타나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며 유혹합니다. 그들을 따라가지도 말고 속지도 말기 바랍니다. 주님은 천국에 올 자들을 위해 각자의 집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은 주님이 아닙니다. 성경에 그들이 다시 온다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져 주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하찮은 집 한 채씩도 지어 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실력도 없는데 어떻게 하늘나라의 실력을 행사 하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하나 구원받기도 힘들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면 예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구원하고 남들도 구원 해야, 남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 전하는 만큼 힘을 얻고 은혜를 받고 더 좋은 구원 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더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도 재림하지 않으셨는데 예수님은 가시면서 곧 온다고 하셨고 사도들도 그같이 말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쪼개서 보면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3일 후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셨지만 처음에는 몰라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방에 모여 있을 때 나타나셨 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영으로서 육신 같은 실존체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주님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항상 같이 있지 않고 때에 따라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돌아 가신 후에 영으로 나타나 전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밧모 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 영계로 천국을 보여 주시고 천국의 실태를 모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 동안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나타나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을 상상해 서 꾸는 꿈이 아닙니다. 실체가 나타나 보이니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평생 보고 싶어도 못 본 자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다시 온다고 말씀하신 후에 1차 2000년 동안 나타나셨고, 또 2차로 재림하십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시고,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온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죽은 자들은 영계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가 주님을 한 번이라도 보았냐고 물으니, 53년 살도록 딱 한 번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아주 억 울한 일을 당하여 수천억 문제가 생겼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는 데 그 얼굴을 보고 한 시간 만에 3천억에 해당되는 억울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 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지금은 잘 지내냐고 물으니, 금전적으로 또 엄청난 고통 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같이 해결된 것을 아느냐고 했더니, 아무튼 신기하고 기뻤다고 했습니다. 그도 교회는 다닙니다. 그에게 말하기를, 주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절대 해결이 안될 일이었으니 감사하며 은혜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은밀히 행하시는 주님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뼈저리게 감사하지 못합니다. 정말 확실히 알고 감사하며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이 또 오셔서 돕고 함께하십니다. 아무리 주님이 어려움을 도와주었어도 자기 가 열심히 해서 된 것으로 알거나 사람들 때문에 된 것으로 압니다. 


주님이 사람을 통해 도와주시고, 보낸 자와 사명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 주시는 것 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엇을 해 주면 모두 자기 때문에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는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입니다. 큰 죄를 짓게 되는 자입니다. 


주님이 음성으로나 영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작은 일로 보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나 주님 꿈을 자주 꾸는 것으로 알고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꿈에 보았거나, 자기를 찾아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꿈에서라도 예수님을 본 사람이 많아요? 적어요? 주님을 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와서 무슨 말을 하고 가셨느냐, 또 어떤 임무를 주셨느냐가 중요합니다. 잘 생각해 봐요. 


주님이 혼을 내러 오셨든지, 혹은 자포자기한다고 위로하러 오셨든지, 혹은 잘한다 고 칭찬하러 오셨든지 주님의 발걸음은 정말 귀한 방문입니다. 진실로 감사해야 됩니다. 


주님을 꿈에서나 환상으로나 기도 중에 못 보았어도 오십니다. 그러나 영이시기에 와도 가도 모릅니다. 쳐다만 봐도 큰 것입니다. 예수님은 청중이 모일 때 거의 나타 나십니다. 한 명이나 두 명쯤은 볼 때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천사를 보내어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한눈에 전 세계를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직접 교회에 나타나 왔다가 가기도 하십니다.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하시고, 기도 중에 나타나기 도 하시고, 홀로 위험할 때 동행하기도 하십니다. 


직접 못 보았어도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못 본 자는 이와 같이 나타나심을 알아 야 됩니다. 본인만 못 봤지, 주님이 오신 것을 느낌으로 깨닫고 감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4~6절을 보겠습니다.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 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세상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제자와 선생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내가 가는 길을 알아야 된다.’는 격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르친 것이 인생길이다. 생명의 길이다. 내가 길이다. 그대로 살면 내가 간 곳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의 실체가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행실이 생명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 행하심이 길이었습니다. 그 생각하심이 생명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 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야 됩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를 보면 길이 많습니다. 길로 가야 편합니다. 무고히 길을 막는 자같이 큰 죄인이 없다고 말들 합니다. 길은 아무도 막지 못하고 막아서 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인생길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명을 받고 가는 길도 막으면 큰 죄입니다. 


산길은 많지 않고, 절벽에는 겨우 하나밖에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길이 있듯이 주님은 인생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길은 주님 자신의 길이 되었고, 주님의 말 씀하심이 인생길이 되었습니다. “멸망길은 넓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좁은 생명길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주님을 찾는 자들은 적습니다. 주님을 찾도록 전도하여 그 길로 가게 해 줘야 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특히‘길’에 대한 묵시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님을 찾는 것이 길이었습니다. 길은 가까이 있는데 도마 처럼 육적인 길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오죽 길을 잘 알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은 인생길입니다. 주님은 그때그때 삶의 문제 속에 길이 되십니다. 삶 가운데 길이 막혔을 때‘어떻게 할까?’하며 다른 궁리를 하거나 다른 생각하지 말고 주님 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이 되시고 말씀의 길이 되시는 주님께서 “이같이 하라.”며 꿈으로나 상황으로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총동원하여 알려 주십 니다. 그러면 절벽에서라도 길을 찾아 쉽게 내려오는 것과 같이 쉽게 길을 찾게 됩 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 가야 합니다. 길이 막혔다고 그제야 길을 닦으면 바윗길도, 산 길도, 인생길도 고생만 하게 됩니다. 또 그 길은 올바른 방향도 아니며 헛수고만 하 게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생명길이며 삶의 길입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혀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길을 닦듯 하지 말고, 이미 나 있는 절벽의 길과 같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내 진로는 뭐지?’하며 고민하지요? 정말 답답하고 걱정될 것입니다. 주님께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물어봐야 됩니다. 주님이 시키는 그 길이 아니면 바위 절벽에서 내려올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난날 주님의 은혜를 잊고 현실에 또 달라고만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니 이 같은 사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됩니다.


길이 막히면 급한 자는 가시덤불이나 잡초 밭이나 절벽을 헤치고 갑니다. 그러다가 큰 고통을 당하게 되며 10배나 더 힘들어 애를 먹고 괴로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 가야 됩니다. 길로 가면 쉽습니다. 안될 때는 방법을 달리해야 됩니다. 또 처음에는 안되는 일도 끝에 가면 되기도 하니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인생들이 각자 삶의 막다른 곳에 부딪힐 때 급하다고 해서 자기를 중심하여 다른 길 로 가지 말고, 주님을 찾고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여 그 길로 가야 됩니다. 


길로 가야 제 시간에 제 갈 길을 가서 목적을 달성하여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길도 아닌 가시덤불이나 절벽으로 가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새롭게 닦아 서 가면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고생만 합니다. 전쟁터에서 길을 잘못 들면 적들의 소굴로 가게 되어 많은 생명을 잃게 됩니다. 신앙길과 인생길을 잘못 가면 사탄의 세계와 악의 세계로 가서 멸망과 실패를 맛보며 세상의 삶 속으로 가게 됩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명길로 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낸 모세를 따라가야만 자기 민족의 고향인 가나안 땅 으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모세를 따라가지 않고 악평하고 불평 한 자들은 광야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시대마다 주님이 보낸 사명자들을 따 라가야 하나님과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됩니다. 


삶의 길에 대한 것은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 어 있으니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지 않으면 하늘이 틀어 버려 안됩니다. 주님의 길은 욕심이 없는 길이며 공의와 화평과 사랑의 길입니다. 긍휼함을 가지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위해 주며, 절대 믿음을 가지고 행하며, 시기 질투가 없고, 자기 사명에 만족하고 충 실하며, 주를 의지함으로 끝까지 가며, 약속을 지키고, 말조심하고, 함부로 형제들 을 판단하지 않으며, 악평과 이간질과 음모와 거짓으로 거스르는 일들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행하지 않는 길은 사탄의 길입니다. 무지의 길입니다. 


겸손과 순종, 온유와 절제, 화평과 기쁨, 희생과 봉사, 전도와 가르침, 기도와 감사, 찬양의 일들이 주님이 가신 생명길입니다. 이 외에도 손님을 대접하고, 없는 자를 먹이고 입혀 주고,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고, 형제를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고 긍정 해 주고 고마워해 주는 일들이 주님이 가신 생명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 같은 삶의 길을 가야 됩니다.


각자 인생의 삶 속에 쉬운 길, 있는 길로 가면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는대로 하면 쉽습니다. 우리 모두는 쉬운 길이며 있는 길인 주님을 찾고,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 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힘든 길입니다. 주님께 묻지 않고 자기 스스로 찾아 간 길은 사망의 길이 되기도 하고, 실패의 길이 되기도 하고, 손해의 길이 되기도 하고, 후회의 길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인생길도 주님 떠나 다녀 보면 상처투성이가 되어 결국 그 길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 다. 나오지 않는 자는 뱀과 짐승을 만나 사망길로 가게 되고 사탄들 속에 가게 됩니다. 사망길은 가면 갈수록 돌아오기 어렵고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길은 조금 잘못 들었을 때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많이 잘못 들면 오다가 기름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떨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길에서 서 있기만 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알고 가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할 것입 니다.


모두 어렸을 때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자기마다 타고난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10대이든 어른이든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한 길을 가든지, 자기의 방법으로 길을 닦으면서 가게 됩니다. 길을 닦다가 힘들어서 못 가고 늦어서 못 가고 말게 됩니다. 이미 닦아 놓은 길, 곧 주님을 찾아서 그 길을 가야 되며 주님 이 사람마다 허락한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요 14:14-15)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주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길로 가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구하면 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주셨듯이 또 주십니 다. 주님께 구하여 받아서 쓰고, 주님을 위해 일해야 됩니다. 우상이나 각종 신상들 에게 구해서 받으면 우상들을 위해 일해 줘야 됩니다. 꼭 하나님과 주님께 구하고 받아 써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을 가지고 주를 위해 쓰게 되고, 자기를 위해 보람 있게 쓰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시행하리라.」 하였으니 얼마나 큰 약속입니까?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않은 연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구해야 됩니다. 사랑하니 원하기만 하지 말고 구해야 됩니다. 받기 원하는 자가 구해야 주고 싶지, 구하지도 않고 원하기만 하면 주지 않습니다.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모두 구해야 됩니다. 개인의 것도 구하여 받아 풍부히 쓰고, 주님의 일도 풍부히 하기를 축원합니다.  


몫에 대한 말씀을 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저마다 자기 몫인 밥도, 옷도, 잘 곳도 부모님이 마련해 주듯이 인생들에게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먹을 복도, 사명 복도, 입고 사는 복도, 집도, 환경도 주 셨습니다. 그러니 자기 몫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기웃거리지 말고,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곳에 가서 인생 푸념하며 곤란하게 하지 말고, 시기도 질투도 하지 말고, 욕심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남의 것을 넘볼 것 없고, 욕심낼 것도 없고, 이유 붙여서 이러니저러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통도 고생도 자기 사명과 자기 몫이 있으니 남의 것을 자기가 손 대며 참견하지 말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몫이 있는데 곤란하게 다른 사람의 것을 얻어먹으면 안됩니다. 그같이 하면 주는 자도 부족하고 얻어먹는 자도 부족하여 서로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자기 몫의 환난과 고통도 있고 각종 축복도 있습니다. 늦더라도 자기 것이 있으니 자기 몫을 받고 살아야 됩니다.


말씀에 따라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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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9/2009 6:52:2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