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연필 한 자루가 있다. 샤프펜슬에 익숙해져 연필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게 되어 내 방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연필 하나를 발견했다.
중학교 때 쓰던 연필인 것 같은데, 내 나이 서른을 넘겼으니 10년도 넘게 내 방 연필꽂이에 꽂혀 있었나보다.나 자신도 조금은 놀랐다. 이렇게 오래된 연필을 가지고 있었다니...
자세히 보니 얇고 긴 종이에 이름, 반, 번호를 쓰고 테이프로 연필을 감싸도록 돌돌 말아 붙여져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 때엔 모든 필기도구에 그렇게 이름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조금밖에 쓰지 않은 것이라 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어느새 나는 새 것만을 찾게 되었고, 내 오래된 연필은 까맣게 잊혀져 갔던 것 같다. 조금밖에 쓰이지 못하고 색이 바래져버린 연필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다시 연필을 들고 이것저것 써보니, 어렸을 때 매일 쓰던 연필인데도 느낌이 새롭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것도 좋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보니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