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생일
-김형영-
1998년 12월 25일.
날이 따뜻해서 그런지 비가 왔다.
날도 흐린 것이 영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꿀꿀한 마음에 집에 있는데 순간 마음에 감동이 왔다.
'명색이 예수님 생신이신데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신앙생활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내가 본래 착했었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어쩜 나름 신앙인이라고 양심이 딸랑딸랑 울린 지도 모르겠다.
2천원을 들고서 부모님 몰래 밖을 빠져나왔다.
제과점에 가니 케이크 모양을 갖춘 까만 브라우니가 있었다.
가격도 1500원이었다.
초 한 개만 넣어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도 했다.
생일에 초가 없으면 안 되니까. 물론 1998개를 꽂아드려야 하지만,
우선 나와의 첫 만남인 만큼 한 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내 집으로 살금살금 들어왔다.
내 방문을 닫고서는 책상 위에 케이크를 올려놓았다.
아차, 라이타.
불을 피울 것이 없었다.
제과점에서 성냥까지 생각을 못했다.
다시 거실에서 간신히 찾은 후 초에 불을 피웠다.
누가 들을 새라 아주 모기만한 소리로 생일축가를 불렀다.
입은 축가였지만 눈은 방문을 계속해서 흘겨보고 있었다.
생일상 받으시는 예수님도 내 모습에 초조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함께 손을 맞잡은 것처럼 케이크를 자르고 혼자 무음의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브라우니를 맛있게 먹었다.
참 이상하지?
반은 장난으로 반은 양심으로 시작한 생일잔치인데,
12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기억이 또렷한 것을 보면 말이야.
아마 예수님도 어설픈 그 날의 생일상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