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밥을 먹는데 생전 섞지 않던 흑미가 나왔다. 이게 웬 흑미인가 하고 자세히
쳐다보는데, 털이 달린 것 같기도 하고 몸체가 살짝 구부러진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쌀통을 열었다. 쌀을 두세 번 휘저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밥을 먹다가 쌀통 문을
열고 나온 것 같아서 도로 가보니, 세상에... 집단 쇼생크 탈출이다로 일어난 것이가?
쌀벌레들이 쌀통 벽에 매달려 필사의 벽 넘기를 하고 있었다. 신랑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밥알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것을 사용해야 박멸할 수 있을까?
(어느덧 나도 주부가 되었다.) 결국 족집게를 선택했다. 그리고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다해
잡기 시작했다. 쌀알보다 작은 데다 움직임도 빨라서 두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었다.
신랑은 죽은 벌레를, 나는 산 벌레를 잡느라 그렇게 아침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략 50마리쯤 잡았다. 스스로 대견해했다. 이쯤 잡으면 되겠지 싶었다. 그래도 안전대책이
필요했다. 냉장고를 열어 마늘을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양파가 보였다.'그래 어차피 매운
것은 그게 그거니까 똑같으니깐 한 번 넣어보자.' 한 10토막쯤 썰어서 여기저기 쑤셔 넣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쌀통을 여는데 쌀을 푸는데 몇 군데가 군청색이다. 이번에는 또 왜 그런가 싶어서 쌀을 휘젓는데
꺅! 양파가 썩어서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쌀벌레는 그 사이에 또 종족번식을
했는데 우후죽순 튀어 나온다. 터미네이터 같은 녀석들. 죽인 줄 알면 또 튀어나오고 또
튀어나오고...
결국 신랑과 의논해서 쌀을 모두 버리기로 했다. 신랑이 쌀을 버리러 가는 것을 나는 지켜보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음에 꼭 꼭 새겼다.
내가 먹는 음식은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이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아서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바로 넣어버렸으니 잘못도 이런 잘못이 없다.
다음부터는 주신 선물 잘 관리해야지.
그런데...
하늘 말씀도 영혼의 양식이라는데 내가 말씀은 잘 듣고 있었는가?
듣고는 바로 잊어버리고 산 것은 아닐까?
헉, 쌀벌레가 여기도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