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사람들은 나에게 질문한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책 추천 좀 해줘."
"이거 띄어쓰기 맞는 거야?"
"맞춤법 좀 살펴줘."
이럴 때면 나는 아주 난감하다.
그래 내가 국문과인 것은 맞지만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의 능력 이상이기 때문이다.
국문과라고 해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다. 대학 와서 읽었던 책 대부분이 논문이나
문학이론들이다. 오히려 입시 때보다 책을 많이 못 보았다. 소설을 읽는 시간보다 소설에
대해서 비평한 사람의 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니까. 그래서 책을 읽어보지도 못한
체, 그 사람의 책의 비유적 의미, 시대 상황, 작가의 생각을 먼저 읽었다. 사과를
맛보지도 못하고 사과맛 주스나 흠뻑 마셨다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책 자체의 맛이나
느낌을 잘 몰랐다. 그러니 나에게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 과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비평문학과다. 4년 내내 비평이론에 대해서
배웠다. 그러다보니 책을 책답게 보지를 못하고 항상 비평의 눈으로, 이론의 잣대에
빗대어 보는 경우가 많았다.
"시가 참 예뻐요." 하기 보다는 "이 시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서 현재 힘든 삶
속에서도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네." 뭐 이런 식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 본연의 마음이 들어오기 참 힘든 경우다.
띄어쓰기나 맞춤법도 그렇다. 그런 것은 알아서 배우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타 과 수업할 때 팀을 짜서 발표를 할 때가 있으면 아이들은 으레 나에게 글을
봐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난감해하며 손사례를 치지만 아이들은 겸손하다면서 더
나를 몰아친다.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글을 봐준다. 사실 타 수업이기 때문에 나보다
그들이 더 전문가다. 언어 사용이나 문장흐름이 문학눈문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내가
굳이 필요 없다. 물론 내가 퇴고를 잘하는 입장도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별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받아들면서 안심해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책을 고를 때 힘들고, 맞춤법이 더 많이 틀리는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국문과답게 생겨먹지 못해서 가끔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래서 애쓰고 있다. 적어도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적어도 한 두 권정도는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누가 글 좀 봐달라고 하면 문장 정도는 다듬을 수
있는 수준을 키워야겠다. 내가 아니라고 해서 남의 기대까지는 꺾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공부가 되는 것이니까.
기대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나?
그래서 하나님을 전혀 몰랐던 나도 이렇게 하나님의 기대 속에 이만큼 성장했나 보다.
여전히 나의 신앙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고, 심정의 맞춤법도 많이 틀리지만,
나를 기대하시는 분이 계시니 눈 딱 감고 조금 더 조금 더 올라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