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나는 명아주입니다by 펜끝 이천 리

20230608나는명아주입니다.jpg





나는 명아주입니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습니다. 다들 그냥 잡초라고 하죠. 맞아요. 저는 들판에 산등성에 하다못해 아스팔트까지 뚫고 나오는 생명력 강한 풀입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잘 자라요. 옛날에는 나를 먹었다고 하는데 그땐 조금이나마 가치가 있었나 봐요.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죠. 들짐승도 나를 먹지 않는데요. 나는 길가에 피어 주변을 바라봅니다. 축 늘어진 매력에 버드나무, 화려함을 뽐내는 장미,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 하다못해 아이들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도 부럽습니다. 다들 자기 쓸모를 찾아 제 위치를 찾은 것 같은데 나만 동떨어진 기분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쓸모가 없는 풀이었을까요?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나를 뿌리까지 뽑더라고요. 그러나 놀라진 않아요. 잡초에겐 늘 있는 일이에요. 우리는 늘 그렇게 뽑히고 사라져갔으니까요. 잡초의 운명이라고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아요.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나서 사라지나 싶어 속상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는 나를 손에 들고는 버리지 않네요. 손 위에 올려놓고는 한참을 걷습니다. 이런 사람은 또 처음 보는 거 같아요. 그러더니 나를 화분에 심습니다. 나를? 왜?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합니다. 재주 없는 나를 뭐 볼 게 있다고 여기 심었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궁금할 틈이 없더라고요. 척박한 환경에서만 자라서 그런지 화분이 주는 아늑함은 나를 들뜨게 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편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누구 하나 물 주는 일 없는 곳에 있다가 한없이 햇볕 쬐고 때 되면 물을 주니 마구 성장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성장이 빠른 풀이었나?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 자 이상 자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환경도 주변도 나를 도와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 한계를 긋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래 난 이 정도의 풀이야. 이 정도만 자라면 됐어. 그런데 한 사람의 손길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킬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쑥쑥 자랐습니다. 키가 주인의 턱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주인은 가위를 들더니 내 가지들을 마구 자릅니다. 햇볕을 머금고 있던 잎들도 더 쳐냅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나? 왜 그러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더니 내 뿌리를 쑥 뽑아냅니다. 뿌리가 햇빛을 보자 눈을 가립니다. 게다가 흙까지 털어내고 나를 극한까지 몰아갑니다. 햇볕을 받아먹을 잎도, 나를 잡아줄 가지도, 뿌리도 조금씩 메말라 갑니다. 주인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나를 더 큰 화분에 옮겨 놓았습니다. 나는 어느덧 큰 것입니다. 화분이 너무 작아 옮겨야 했습니다. 뿌리는 자리를 찾지 못해 꼬일 대로 꼬이고 가지와 잎은 서로를 뽐내느라 속에서부터 썩어갔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는 잘 크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더 크지 못하고 병 앓이 한다는 것을요. 덕분에 나는 주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어 아직도 잘 크고 있습니다. 주인이 가지치기해 준 덕분에 상쾌한 바람이 몸 구석구석 들어옵니다. 잎들도 누구 하나 가려진 것 없이 골고루 잘 받습니다. 나는 주인이 잡아준 수형대로 좌우로 날개를 펴며 멋있게 크고 있습니다.

나는 잘 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주인은 나를 무슨 생각으로 키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왜 주인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요? 주인은 그럽니다. 키우면 더 이상 들풀이 아니라고요. 나는 아직 내 쓰임을 알지 못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나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니에요. 주인의 손에 이끌려 지구라는 화분에 심어진 특별한 존재니까요.


참고 : 며칠 뒤 명아주에 대해 검색해 보니 다재다능한 식물이었습니다.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비타민B2도 있어 눈 건강에도 일조하고, 몸에 열도 내려주고, 피부 염증도 가라앉혀 준다고 합니다.
비단풀이라는 잡초는 사포닌 성분이 풍부하고, 한련초라는 잡초는 암세포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그냥 태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알고 보면 모두가 특별합니다.




조회수
18,059
좋아요
3
댓글
0
날짜
6/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