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아침이 좋아!by 펜끝 이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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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쯤. 눈 비비며 일어나 대야를 들고 할머니와 엄마랑 산길을 걸어갔지. 공동묘지를 지나 산 중턱에 있는 딸기밭을 향해. 졸음에 뒤척거리는 발아래에는 결초보은에 나올법한 풀들이 아침이슬에 젖어있고, 풀잎이 발목에 스치며 바짓가랑이를 적실 때 피부가 느끼는 눅눅함이란! 아침 해가 돋을 때까지 딸기를 따야 했어. 아홉 살 아이의 손도 노동력이었던 시절. 할머니는 물었어.  “너의 다라이(대야)에는 왜 큰 딸기가 없나?”  큰 것은 따면서 내가 다 먹어버렸지. 어이없어하던 할머니 얼굴은 지금도 생각나.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들으며 산에서 내려와 학교로 가. 1교시 직전이라 운동장엔 아무도 없어. 홀로 걸어가는 나는 참으로 작았던 것 같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없으니 세상 종말을 맞는 듯한 적막한 느낌이 컸지. 지금도 매년 늦봄에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 딸기를 따러 가던 시절이 생각나.


경남으로 이사하고 중학교 시절 내내 아침 6시에 일어났어. 소죽을 끓이는 미션은 나의 일. 커다란 가마니에 목초를 쓸어 넣고 등겨와 함께 소먹이를 익히기 위해 한 시간 열심히 불을 때야 했지. 가마솥 뚜껑 아래로 눈물이 흐르면 ‘이제 됐다!’ 장작으로 피우는 불이 아니라 지푸라기를 때면서 날리는 먼지가 머리카락에 소복 쌓였단다. 눈썹에도. 돌아보면 신데렐라가 따로 없었지 뭐. 엄마는 계모가 아니야.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그 시절은 이웃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거든. 가끔 엄마는 한 아이 얘기를 들려줬지. 아침밥을 지어야 하는 아이는 잠이 부족해 보리쌀을 퍼다가 보리쌀 단지를 끌어안고서 잠들었다나. 나는 그런 형편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후딱 아침을 먹고 논두렁을 걸어 등교하던 나. 아무리 바빠도 절대 아침을 거르지 않았지. 그렇게 부지런한 습관이 길들어져 아침형 인간이 된 거야.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었던 시골 생활은 도시 아이들과 다른 바이오리듬이 나에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어. 아침이나 오전에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어두워지면 눈꺼풀이 풀리면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어. 숙제도 책을 읽는 것도 새벽과 오전 중에 하는 것이 좋아. 저녁에는 휴식을. 일찍 잠자리에 드니 새벽 기상은 쉬운 일과가 되어버렸네. 새벽 예배를 드리는 한국 교회 생활은 나에게 어렵지 않은 루틴이야. 어린 시절 환경 덕분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던 것이 축복이라고 할까.


아침에 입맛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가. 7시면 배가 고프고, 밥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침샘이 자극받아 침이 고여, 맛있는 밥. 위는 운동을 하고 대장도 자연스럽게 기능을 발휘하지. 뇌에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행복한 상태가 돼. 새벽의 명상으로 뇌를 비운 것에 더해 열량이 보충된 두뇌는 오전에 열일 할 준비가 된 거야.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면서 글을 써. 수승화강(물기운은 위로, 화 기운은 아래로)이 이뤄진 상태로 나의 심신은 평온함을 느끼게 되지. 정말 기분 좋은 아침이야. 이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살맛 난다? 이런 아침을 매일 설렘으로 기다려. 아~ 이 아침이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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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7/3/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