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을 열다 구석진 자리에 놓인 낯익은 지갑을 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하얀 얼룩도 살짝 생긴 정겨웠던 지갑. 지갑형 핸드폰 케이스로 카드가 하나, 둘 옮겨지고 현금 사용할 일도 없어져 25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지갑이 서랍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 친한 친구가 선물해 준 이 지갑은 내가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고급 가죽으로 만든 메이커로 사용하기 편리하여 무척 아끼며 15년이 넘게 잘 써왔었다.
조심스레 꺼내서 물티슈로 닦아내고 바나나 껍질로 한 번 더 닦고 마지막으로 향기 좋은 마사지 크림으로 닦고 나니 다시 반짝이는 지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책상 위에 두고 지내다 핸드폰 케이스에 카드만 넣고 다니는 편리함에 밀려 다시 서랍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 쓸만하게 반짝이지만 쓸 일이 없으니 햇빛 볼일도 없게 됐다.
그 지갑은 그때가 황금시간이었던 거다. 나 또한 지금 내 나이도 꽤 쓸만하다며 다독이고 닦아가며 인생 후반전을 잘 쓰는 중이다. 그래, 지금이 나의 인생 황금기야. 있을 때 충분히 잘하자. 때 지나면 언제 서랍 안으로 들어갈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