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으려면 돈을 모아야지!’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10년을 바쳐 모은 ‘우리말’들. 지하창고를 가득 채운 문서들을 보고 김판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다. 문서는 다 뺏겼고 ‘조선어 사전’을 만들려던 계획은 엉망이 된다. 누군가는 오열하고 누군가는 배신하고 누군가는 잡혀 고문을 받고 죽었다.
‘아직도 왜 이 일이 이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너희들에게 조금이라도 떳떳한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김판수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왜 김판수는 목숨을 걸어야 했을까?’로 시작한 생각이 ‘왜 우리말을 지켜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조선어를 금지하고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바꾸게 했다. 역사도 왜곡하여 내선일체를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을 천황에 충성하는 일본인으로 만들어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말과 역사를 지켜야 했을 것이다. 김판수가 지키려 했던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가족을 다시 보지 못한다 해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민족을 지켜야 ‘나답게’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나의 ‘나답게’는 뭘까? 지금은 민족을 지키는 시절은 아니다. 나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이 되어 살아야 할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사춘기도 지났는데, 다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사춘기를 잘 보내야 독립적인 인간으로 잘 성장할 수 있듯이, 지금 나를 잘 정립해 놓아야 앞으로 남은 인생도 더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늘 사춘기 인생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