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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먹어보자by 날개단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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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상자 하나를 어깨에 메고 왔다.
“웬 상자야?”
“방학 때 애들 귤이나 실컷 먹이려고.”
“어휴, 귤은 금방 썩는데...”
걱정이 앞선다.

귤은 맛있다. 한입 베어 물면 그 새콤달콤함이 입안 가득 짜릿하다. 껍질 까기도 쉽고 가성비도 좋아서 겨울만 되면 사 먹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하다.  그런데도 망설이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쉽게 곰팡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귤 상자를 열고 여기저기 살핀다. 아직은 아무 이상이 없지만, 귤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귤의 반질반질한 얼굴만 믿어서는 절대 안 된다. 몇몇 귤은 생각보다 야비하다.

하루를 지내고 상자를 열었다. 역시나 몇몇 귤들이 퍼렇게 멍든 얼굴을 치든다. 대체 누구한테 맞아서 저렇게 당했을까. 어제 다들 사이좋게 생겼더니만 누구야 누구! 아니면 서로 주먹을 날리며 싸운 걸까? 이유를 듣고 싶으나 귤들은 딴청을 피운다.

‘요것들 내가 다 알았어. 곰팡이 묻은 몇 놈이 슬쩍 들어왔더라. 화장발에 속아서 그냥 다 같은 싱싱한 귤인 줄 알았지. 친구들 틈에 딱 붙어서 곰팡이 비비고 있더라. 순진한 귤들은 자기 몸에 붙은 곰팡이 보고 자기 탓인 줄 알고 과즙을 뚝뚝 흘리며 곪아가더라.’ 진범은 친구 생겼다고 좋아한다. 혼자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 같다. 역시 야비해.

신랑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특단의 조처를 내렸다. 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킨 것이다. 식탁 위에 8열 종대로 줄 섰다. 그 모습이 마치 선별 진료소 앞에 선 검사자 같다. ‘검사 결과는 음성일까? 양성일까?’ 내일이면 얼굴색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떨리는 심정일까.

이제 더 이상 서로 비빌 일이 없다. 누가 누구에게 속닥거릴 일도 없다. 이제 온전히 버티는 일만 남았다. 제발 내일은 모두 음성 나와라. 껍질도 까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가면 억울하잖아.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 너희 전부 선발된 열매 아니냐!

부디 올겨울엔 오래오래 먹어보자! 귤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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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3/4/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