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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간소함으로by 펜끝 이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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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사서 입지 않던 검은색 스트라이프 정장 통바지를 꺼냈다. 고급 질감이 좋아 버리지 않고 옷장에 넣어두었다. 오늘 허리 단추를 가장 바깥쪽으로 옮기는 바느질을 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호크도 허릿단 끝에 꿰매어 두고 입어봤다. 늘어난 허리둘레에도 불편하지 않다. 훌륭한 조문용 옷이 마련된 것이다. 크롭형 상의와 통바지가 요즘 유행에 맞아 흐뭇하고 지구 환경에 일조한 것 같아 가슴 벅차기까지 하다.

요즘 갑작스러운 폭우나 가뭄, 산불 등 자연재해가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다는 소식을 매일 접한다. 우리 삶이 풍요로운 만큼 달라진 지구 모습. 플라스틱은 노화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남아 해양 생물의 숨통을 조인다. 즐겨 먹는 육류를 값싸게 제공하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가 투입된다. 화석연료는 타면서 이산화탄소를 남기며 미세먼지를 만들고 지구를 뜨겁게 한다. 지식인들은 지금 우리의 삶에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인은 공멸한다고, 환경운동가들은 과학기술로 단번에 해결할 방법이 나올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접어두라고 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탄소 배출을 시급히 줄이는 관건은 생활 소비를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가능할까?

1936년 미국 사회사상가 리처드 그레그가 말한 ‘자발적 간소화’를 호출해 본다. 적게 가진 삶을 직접 선택하는 것이다. 한때는 풍요로운 소비문화 속 부유한 사람들이 위험 부담 없이 더 간소한 삶을 시도했었다. <<디컨슈머>>에서는 1990년대 초 세계 경제 불황으로 비자발적 검소 생활도 전개되었다고 했다. 그때 다섯 명 중 한 명이 가진 것이 적은 삶을 살아갔다. 변화는 쉽지 않지만, 낡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유행하는 물건을 덜 사는 삶을 살아가며 소비주의에 대한 거부가 시애틀에서 있었다. 한 여성은 속옷과 양말, 신발만 새것으로 구입하고 덜 사는(buy) 삶을 사니(live) 동네를 걷는 데서 스릴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오래된 옷을 수선하여 입었을 때 뿌듯함과 같은 맥락인 듯하다.

개인의 소비 욕망과 경제, 지구 기후 위기가 연계되어 있는 시대에 이윤과 성장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 소비를 통제하며 간소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 경남 MBC 다큐에서 만난 김장하 선생은 물질적 부로 지위를 판단하는 외적 가치에 초연한 사람이다. ‘공헌한 표 내지 말고 살아라.’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고 약을 지어 벌어들인 100억 대 이상의 돈을 사회로 환원했다. 몇십 년 된 탁자를 쓰고 오래되어도 깨지지 않았으니, 찻잔을 그대로 사용한다. 헤어진 옷솔기 때문에 팔이 걸리는데도 입고, 평생을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타며 걸어 다녔다. 진정한 자발적 간소화의 삶을 살았다.

물질 소비보다 자신이 따르고자 하는 이상을 실천하는 것으로 내적 심리적 욕구를 충족하는 모습이다. 그는 인생의 의미를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에 두었다. 내재적 가치를 우선시하니 남들이 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밖으로 드러나는 갖춤을 위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줬으면 그만이지”란 철학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격려하고, 학교를 세워 나라에 헌납했고,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세웠다. 지방신문사를 적극 후원하며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삶으로 소문내지 않고 기부를 해왔다.

“돈이란 게 ‘똥’과 같은데 확 모아놓으면 악취 진동하지만,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자신은 최소의 소비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풍부한 삶을 보여주는 어른 김장하의 말이다. 그의 말속에 소비 자본주의 시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이 있는 것 같다. 돈을 모으는 생산과 물품을 사는 소비에서 벗어나는 것. 덜 사고 더 나누는 삶이면 미미해도 뜨거워진 지구를 조금은 식힐 수 있지 않을까. 이참에 치마를 사러 동대문시장이 아닌 우리 동네 ‘아름다운 가게’로 활기차게 걸어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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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6/2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