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_보도자료

시대를 따라 차원을 높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왜 성경을 배워야 할까? 기독교인의 경전인 신약성경 디모데서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성경을 보고 배워야 하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고 나와 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 3:15)

구원이란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은 구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구원이란 내가 죽을 상황에 있었는데 살아났다거나, 정말 벗어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그런 상황인가? 내가 죽음에 임박한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도 아닌데 내게 구원이 필요한가 생각할 것이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우리가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자유케 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된다고 말씀했다(요한복음 8:31~34). 또 사도 바울은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죽은 격이 되었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말씀했다(고린도전서 15:21~22). 아담의 죄(원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모든 인생은 죽은 격이 되었고. 다시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기 위해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죄와 하나님이 보시는 죄는 다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담이 지은 원죄의 대가를 왜 내가 받아야 하는가? 그래서 배워야 한다. 축구 국가대표가 월드컵 경기에 나가 우승하면 나라가 우승한 것이고 나도 우승한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이 지면 우리나라가 진 것이고 나도 경기에서 진 격이다. 그처럼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 아닌 신앙의 조상이자 대표인데 그 대표가 죄를 지었기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자가 되었다. 하지만 2,000년 전 예수님은 십자가 길을 가면서 생명의 길을 내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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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이란 죄가 무엇인지 알고 죄를 짓지 않고 회개해 온전해지는 것이며, 사망권에서 벗어나 생명권으로 나오는 것이다.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죄를 지었어도 회개할 수 있다. 죄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가 되고 구원받게 되며 복을 받는다. 구원이란 죄가 무엇인지 알고 죄를 짓지 않고 회개해 온전해지는 것이며, 사망권에서 벗어나 생명권으로 나오는 것이다.

잘못된 인식관을 벗어나야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잘못된 인식관을 갖게 되면 오해하게 된다. 그래서 지난 호에서 성경을 제대로 보는 방법 몇 가지를 설명했다. 문자 그대로 성경을 인식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잘못된 신앙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사실이 아닌 데도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믿으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선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성경을 본다면 무척이나 쉽고 재미있다.

단순히 믿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이 아닌 것을 믿으려 하니 삶에서도 성경의 이야기가 이뤄질 수 없다. 즉, 여호수아 때 태양이 멈춘 일이 없는데 이를 믿으려니 어렵고,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태양이 멈추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신앙생활을 하면 성경의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난다. 여호수아 시대에 태양이 멈춘 것으로 느껴지도록 전쟁에서 빨리 승리하게 된 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느껴지면서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성경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이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성경을 제대로 배우면 성경 속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로 인해 손해 보지 않고 성공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먼저 성경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생각을 인식관(認識觀), 혹은 주관(主觀)이라고 말한다. 이‘관(觀)’이라는 단어는 시체를 담는 나무 상자인 ‘관(棺)’과 발음이 같다. 관(棺)에 담긴 시체는 이미 죽어서 움직일 수 없고, 관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그처럼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주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온전한 인식관과 주관과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이해하고 믿을 수 없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된 인식관으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기에, 성경이 어렵고 이해되지 않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을 깊이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는 당연하다. 성경 말씀이 사실이 아닌데 사실처럼 믿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잘못된 인식관을 버려야 한다. 마치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서 관을 열고 나오듯 기존의 잘못된 문자 신앙관을 벗어나야 한다.

성경 말씀이 내 이야기가 된다

마태복음을 보면 베드로가 물고기를 건져 올려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성전세를 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마태복음 17:24~27). 하지만, 베드로가 낚시로 낚아 올린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물고 있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는 믿기 힘들다. 차라리 그물이나 다른 도구로 잡은 물고기를 팔아서 한 세겔을 마련했다는 말은 믿을만하다. 이를 두고 여러 성경 주석에서는 실제 일어난 기적이라고 하며 믿으라고 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마태복음 4:20).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 사실 돈은 물고기가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지고 다닌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말씀을 배우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라는 바다에 나가서 복음의 낚시를 던졌고, 그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 한 세겔을 흔쾌히 준 것이다.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성경에서도 이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며 앞으로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했다(마태복음 4:19). 이후에 베드로는 실제로 한자리에서 3천 명을 전도했다(사도행전 2:14~41). 이뿐만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서도 사람을 물고기로 비유해서 말씀했다(아모스 4:2, 예레미야 16:16, 하박국 1:14~15). 이처럼 물고기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고, 바다는 세상을 비유한 것이며낚시를 던지라는 것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었다.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은 예수님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메시아인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 내용이 구약이며,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다시 올 것을 약속한 내용이 신약이다. 예수님은 다시 오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할 것을 예언했다(요한계시록 20장).

한번 생각해 보자. 아주 오래전 원시인들은 동물을 사냥해서 잡아먹을 때 그대로 뜯어 먹었다. 조금씩 시대가 발달되면서 동물의 가죽을 벗겨 먹다가, 불을 사용해서 구워먹게 되었고, 이후에는 도구를 이용해서 요리를 해서 먹었다. 최고로 문명이 발달된 현재에는 아주 다양하고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동물을 사냥해서 무식하게 뜯어먹듯이, 성경 말씀은 비유의 말씀인데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믿고 행하는 원시 종교인들이 있다. 반면에 잡은 고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맛있게 만들어 먹듯이 비유로 되어 있는 성경 말씀을 이치에 맞게 풀어서 제대로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있다. 원시인들은 옷을 만들 줄 몰라서 알몸으로 다녔다. 이런 원시인들의 살은 검게 타고 피부는 억세며 더럽기까지 하다. 그처럼 신앙의 원시인처럼 살아가면 의의 옷을 만들어 입을 줄 모르니 마치 알몸으로 살 듯이 신앙생활을 한다. 반면에 발달된 신앙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르다. 옷은 의의 행위를 비유한 표현이다. 자신의 행위를 빛이 나게 하려면 알아야 한다. 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의를 행하고 그로 인해 빛을 발하며 자기 영혼은 빛난 의의 옷을 입게 된다. 만일 원시인의 삶과 문명이 발달한 현대인의 삶 중에서 선택권을 준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대부분 당연하게 현대인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처럼 신앙에 있어서도 선택권을 준다면 보다 발달된 신앙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시대를 따라 차원을 높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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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역사는 시대와 때를 따라 항상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예수님도 분명히 시대를 분간하라고 말씀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12:56>


하나님은 구약시대는 종급 시대로 종급 말씀을 주어 그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구원받게 했고, 신약은 자녀급 시대로 예수님을 통해서 자녀가 되는 말씀을 주어 그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이루게 하셨다. 예수님이 다시 오는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의 신부가 되는 구원을 이루게 한다고 했다(마태복음 25:6).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시대와 때를 따라 항상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예수님도 분명히 시대를 분간하라고 말씀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 수 있으며 시대에 맞는 구원을 이룰 수 있다. 2000년 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지만 하나님의 때를 몰라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는 구원역사를 몰라봤고 불신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구약급 신앙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15)

지금 이 시대는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와서 그의 육신이 된 사명자를 통해 이 시대에 맞게 최고로 차원을 높인 신앙을 할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깨닫고 합당한 신앙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선교회 관계자는 성경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언제든 선교회(goodnews2025starts@gmail.com)로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기사원문 : [한강일보]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96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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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1/19/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