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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 온전한 성경 해석으로 새로운 영적 지평을 연 참스승 만나다

- 제자 故 김종진 교수가 밝힌 하나님의 사역자 ‘정명석 목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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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정혜빛 권사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고 김종진 교수의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 책 표지.


삶을 살아가면서 심령의 곤고함을 느끼고 있던 고 김종진 교수는 생전에 정명석 목사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가게 된다. 그는 하늘의 길을 홀로 걸어가는 정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삶에 대한 7년간의 기록을 남겼다.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가 남긴 기록은 최근 아내 정혜빛 권사에 의해 「정명석 선생님과 함께한 7년의 기록」이라는 책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김종진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출강하던 중 제자에 의해 기독교복음선교회를 만났다. 그는 유서 깊은 한학자 집안에서 나고 자라 증조부로부터, 한문학을 사사했다. 한문학에 심취해 연구하던 중 전주대학교 강단에 설 즈음에 기독교에 입문한다. 시작은 세례증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후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하며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성균관대학교 출강 중 학생을 전도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던 중 “성경을 2000번 읽은 분이 계시다”라는 말을 듣고 정명석 목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정 목사의 잠언집 [하늘말 내말]을 읽고,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잠언을 읽는 듯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중 “인생은 얼마나 맛있게 먹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의롭게 사느냐가 문제다”라는 잠언을 읽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가난과 쓰라린 고통을 겪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김 교수가 스승을 만나 학자로서 제자로서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기록한 7년간의 기록은 정명석, 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책 앞부분에서 온전한 성경 해석으로 새로운 영적 지평을 여신 인생의 참스승을 만났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역사 앞에 증인이 되고 싶어 30년 넘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온 인생 일기 속에 사실대로 적어놓는다고 술회하고 있다. 세상 언론에 비친 모습과 달리 선교회에서 주장하듯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마녀사냥에 의한 여론몰이로 왜곡 보도되었다는 정 목사. 그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정명석 목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일화를 지면을 빌어 소개한다.


월명동 자연성전 앞산 돌조경이 비스듬하게 넘어질 듯 보이는 이유
기독교복음선교회 월명동 자연성전은 천혜의 자연 속에 수십 톤에서 수백 톤이 넘는 돌조경으로 조성되어 아름답고 웅장하며 신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 목사는 이곳 앞산 돌조경에 대해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 적이 있다. 저기 앞산의 돌이 비스듬하게 넘어질 듯 보이는 이유는 정면에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도 잘못된 주관의 시각을 가지고 보면 바로 볼 수 없다. 사람을 바로 보려면 진리로 보아야 한다. 진리를 던져 보면 참 사람인지 거짓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하늘의 의로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늘에서 바라본 바른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뜻이다.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저자는 정명석 목사는 어떠한 고난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굴하지 않았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월명동 앞산 돌조경을 완성했을 때다. 돌이 다섯 번 무너졌지만 정 목사는 굴하지 않았다.정성을 들여 쌓은 돌들이 무너졌을 때 처음에는 모두들 상심이 컸다. 하지만 정 목사는 주일 말씀을 통해 오히려 교인들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그 비에 무너질 작품이라면 이렇게 미리 무너진 것이 천만 번 잘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사용하다가 무너졌다면 많은 생명의 위험이 있었을 것인데 하나님이 미리 무너뜨리셨고, 그것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벽 2시경에 무너진 것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무너진 돌조경을 두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정명석 목사는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며, “아무도 없는 순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나는 다시 쌓을 거야”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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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의 김종진 교수에게 줄 ‘오직 하나님’ 사인을 하고 있는 정명석 목사.


정상(頂上)의 삶은 정상(正常)으로 사는 것 “나는 말보다 실천이다”...실천적인 삶을 강조
정명석 목사는 1994년 1월 4일 아침 말씀을 전하며 신앙인은 생활이 이상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라 소망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소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 현실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이상적으로 살아가야 하늘에서도 이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상(頂上)의 삶은 정상(正常)으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구원이란 인간성 회복에 있으며, 생활 속에서 ‘자기실현’이라는 실천적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쳤다. 깨달았으면 실천해야 하며 지나치게 신앙에만 치우친 삶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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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8월 15일 태안반도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기독교복음선교회 해외 교인들과 청년부들이 정명석 목사와 함께 광복절 기념행사를 마치고 축구에 이어 배구 경기를 할 때 서해안 밀물을 멈추는 표적이 일어나다.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서해안 밀물을 멈추는 표적이 일어나다

1995년 8월 15일 태안반도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해외 교인들과 청년부들이 광복절 기념예배를 드린 후 축구 경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먼 지평선까지 물이 빠진 몽산포 해수욕장은 국제축구장 수십 개 규모의 드넓은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4시쯤 서서히 물이 들어오자 배구경기를 진행했다. 오후 6시쯤이 되자, 밀물이 해변 40미터 전방까지 밀려와 경기를 멈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정명석 목사는 손을 높이 올리고, 짧은 시간 기도를 했다. 김 교수는 경기를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상은 배구장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10분이면 물로 덮일 것을 알고 더 이상 물이 밀려오지 않도록 기도한 것이다. 경기가 진행되었던 그날은 음력 1995년 7월 19일로 백중사리에 해당된다. 어김없이 물이 육지까지 차야 하는데 물이 멈추었다. 당시 밀물이 멈춘 모습은 촬영차 나와 있던 MBC 기자가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 정 목사는 “하늘은 극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역사를 일으키신다. 물은 곧 들어오지, 경기는 더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내가 최선을 다해서 극적인 승리를 하고 말 테니 저 바닷물을 멈추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나님의 극적인 역사도 극적인 조건을 쌓아야 일어난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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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6월 북핵 문제로 전쟁 위기설이 난무할 때 정명석 목사는 제자들과 함께 고려대학교 노천극장에서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정명석 목사는 누구보다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자다


대한민국에 큰 환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는 기도했다. 1994년 6월 북핵 문제로 전쟁 위기설이 난무할 때도 그는 제자들과 함께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당시 정 목사는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라며 기도회를 이끌었다. 기도회에 함께 참여했던 모 회장은 “대한민국이 잘 된 것은 국운이 돌아와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라를 위해 기도한 젊은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선교회 관계자는 “고 김종진 교수는 7년 간의 기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사역자인 정명석 목사의 삶을 수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며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원문 : [한강일보]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97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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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