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아차산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 또는 ‘아단(阿旦)’으로 언급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쓰인 『고려사』에 ‘아차(峨嵯)’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한편 태조 이성계의 휘가 ‘단(旦)’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 ‘단’이 들어간 이름을 다른 글자로 바꾸면서 ‘단’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차(且)’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자만 고쳤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등을 모두 ‘아차산’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아차산 유래」는 강진옥 외 3인이 『증보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경기도 구리시 편의 자료 수집을 위해 2014년 4월 1일에 갈매 도당굿 전수 회관에서 박명섭에게서 채록하였다. 이에 앞서 조희웅은 1980년 8월 16일 현 구리시 교문 2동에서 윤세영[남, 78세]에게서 두 편, 1980년 8월 20일에 구리읍 수택 5리에 있는 이강범[남, 57세]에게서 한 편을 채록하여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군 편에 수록하였다. 또 이수자[전 중앙 대학교 교수]가 1995년 3월 4일 토평동 경로당에서 이연순에게서 채록한 자료는 『구리시지』에, 임병혁이 1998년 1월 30일에 채록한 자료는 『설화집』2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권태효가 2004년 4월 10일에 교문동 구리 문화원 사무실에서 채록한 자료가 『경기 민속지』 7- 구비전승에 수록되어 있다.
아차산에 관련된 설화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산을 지고 가던 장사가 쉬었다가 다시 지고 가려고 할 때 어깨 끈이 끊어져 '아차' 하면서 산이 놓여 아차산이 되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산 이동 설화를 차용하여 산이 서울[한양]이 되기 위하여 오다가 실수로 서울[한양]을 구성하지 못하고, 아차산이 되어 동구릉을 이루게 되었다는 설화이다. 마지막 하나는 왕이 신통하기로 유명한 점쟁이를 시험하기 위해 쥐의 숫자를 알아 맞추라고 했지만 틀리자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점쟁이는 쥐의 배 안에 있던 새끼까지 맞춘 것이었다. 왕이 명령을 거두고 점쟁이를 살려주라고 했지만 이미 처형한 뒤였다. 이 설화는 점쟁이가 훗날 김유신으로 환생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외 우국지사가 의병을 일으켜 서울[한양]에 입성하려고 고개를 올라섰는데, 이미 서울[한양]이 함락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아차산 유래」 [峨嵯山由來]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