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고 눈치 없는 양
내가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20살 겨울이었고,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몇 달 후였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니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남들은 주구장창 기도도 잘하는데 나는 5분을
넘기기 어려웠다. 어쩌다 10분을 넘기면 뿌듯했다. 찬양을 하면 불을 받는다는데 그 느낌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신앙에 고비가 생기면 푸념만 늘었다. 교회 일찍 온 애들은 좋겠다. 나는
덜 되어서 20살에 왔나? 좀 더 일찍 부르시지 않고. 뾰루퉁.
아닌데~
아니라고요?
일주일 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삐걱거리는 뇌를 한 번 돌려봤다.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시골 이모가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잠시 살면서 나를 가까운 교회로 데려갔었다. 독실한 신앙인
같았다. 크리스마스 때, 이모 따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찬송가도 불러주었던 것 같았다.
3학년 때는 윗집 넷째 언니가 자기네 교회로 데려갔었다. 여름성경학교인데 엄청 재미있고 수영장도
간다고 했었다. 며칠 다니다가 말았다. 5학년 때 동생 친구가 교회 전단지 붙이면 용돈 준다고 해서
따라갔었다. 1년 반 정도 교회를 다녔었다. 중 2때 친한 친구가 자기네 교회 가자며 꼬셨다. 교회가
집 바로 앞이었다. 예배를 갔었는데 친구가 별로 챙겨주지도 않는 것 같아서 몇 번 가다 말았다.
고1때, 친구가 교회에서 촛불의 밤을 한다고 해서 불렀다. 교회 가서 행사를 보는데 낯설기도 하고
생소해서 오래 보지 못하고 나왔었다. 고2때, 친구가 교회 행사사진을 보여주면서 교회가면 이렇게
재미있다고 자랑했으나 듣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이 나를 참으로 많이 부르셨다.
거리를 지나면서 교회 간판을 수도 없이 보았다. 버스나 광고판에 성경구절을 읽어본 적도 많다.
교회 전단지를 수 백 장은 받았다. 명동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외치는 자들을 봤었다.
친구들 중에 교회 다니는 애들이 수십 명이었다. 학교에 신앙동아리도 많았다. 집에 아무도 신앙은
없었지만 성경은 두 권이나 있었다. '쿼바디스'나 '십계' 같은 종교영화를 봤었다.....
예수님은 나를 매일 매순간 부르고 계셨다.
내 이름을 얼마나 부르셨을까.
20살이 지나서야 겨우 내가 대답을 했다.
무디기는 나무늘보 같고 , 눈치 없기는 곰 같은 저를 끝까지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