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무전기라고 들어봤니?"
초등학교 앞이 시끌벅적하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까만 물체를 손에 쥐고는 연신 침을 튀기신다.
"이게 얼마나 신기한 물건이냐면, 다른 반인 친구들끼리도 통화할 수 있고, 방송실 스피커로 내 목소리가 나오게 할수있어. 한번볼래?"
버튼을 누르자 지지직 소리와 함께 아저씨의 목소리가 확대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그 신기한 과정을 지켜봤다.
"이거 한 번 갖고 싶은 사람?"
"저요, 저요!"
남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과장된 몸동작을 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말이지, 여러분은 아주 운이 좋은 친구들이야. 사실 이 아저씨는 책을 파는 사람인데, 여기 자판대 보이지? 바로 만화천자문과 명심보감이야. 오늘 이 책을 사는 친구에게 이 만능무전기와 요 미니 사과 망원경을 다 준다 이거야."
책 판다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반응을 몰라볼 정도로 식어갔다. 에이 그럼 그렇지. 이내 자판대 앞은 썰렁해졌다.
그런데 그 틈에서 여전히 무전기를 황홀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으니 바로 나다. '저것으로 학교 스피커에 내 목소리가 나오면 엄청 재미있겠다. 애들이 깜짝 놀라겠지?'
아저씨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친구가 관심이 있는 모양인데 어때? 책 두 권 사면 이 선물 다 주는데."
"그런데 전 지금 돈이 없는데요."
"집에는 돈이 있니?"
"네 있어요."
"지금 다른 학교로 가봐야 하긴 하는데... 그럼 널 믿고 특별히 기다려줄게."
정말 전심을 다해 뛰었다.
아저씨가 나를 믿고서 기다려준다니 콧구멍에 열기가 나도록 뛰고 또 뛰었다.
"아저씨, 헥헥... 여기 4500원이요."
"야, 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구나. 여기 책 두 권이 있고, 사과 망원경도 줄게. 그런데..."
"네?"
"친구가 간 사이에 몇 명이 책을 사서 만능무전기가 다 나가고 없네. 이걸 어쩌지?"
나는 울상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럼 이렇게 하자. 아저씨가 특별히 내일 이 시간에 올 테니까 여기서 보자."
"네."
신났다. 책 두 권과 사과보다 작은 망원경을 들고서 신나게 집으로 뛰어 갔다. 내일이면 친구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학교 스피커에서 나올 내 목소리로 깜짝 놀랄 친구들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날이 되자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무전기를 받을 생각에 마음은 이미 교문 밖에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나는 종소리와 함께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혹시 나 늦었다고 먼저 가실까 걱정 되어서.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시간도 내가 더 빨랐다. 그렇게 5분, 10분, 20분... 기다려도 아저씨는 오지 않았다. 장소를 잊으셨나 싶어서 주변을 돌아다니고 곧장 그 약속 장소로 다시 와보았지만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몇 명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빛으로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었다.
눈물난다.
속이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돈을 떼 먹고 가는 것도 모잘라 어린 마음에 불신이라는 쓰레기를 버리고 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