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눈부시게 맑고 쾌청하다 .
욕실에 빨간색 고무통이 놓여 있다면 그것은 엄마가 이불빨래를 하겠다는 신호였다. 바로
나에게 보내는 SOS같은 거였다. 고무대야 높이는 7-80cm였다. 내 키의 절반이 조금
안되었다.
이불빨래 하기 직전에 먼저 발을 씻었다. 그리고 바지를 엉덩이 직전까지 끌어올렸다.
엄마의 어깨를 잡고 고무통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초벌 빨래한 이불이 소금기운에
풀이 죽은 배추처럼 얌전히 누워있었다. 발로 밟으면 마치 늪에 발을 디딘 것처럼
물컹물컹하다. 나는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걷는 탐험대처럼 내 발검음도 한 발
한 발 신중했다. 혹여나 발을 잘못 디디어 물만 있는 부분을 밝게 된다면 몸은 균형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불이 고루고룩 밟힐 수
있게 수시로 뒤집어 주어야 했다. 물론 물 먹은 이불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침
잠 많은 사람을 손수 일으켜 세우는 것처럼 온 몸의 힘이 빠짝 들어갔다. 한 번에 뒤집지
못하면 애쓴 보람도 없이 또 해야 하니까 늘 한 번에 잘해야 했다. 한 번에 못하면 힘 빠진
몸으로 자꾸 해야 하니까 시간만 지체되고 더 기운만 소진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보면 세제 물은 흙탕물이 되어 간다. 이제 헹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헹굼도 만만치는 않다. 새 물을 부어도 부어도 검은 물이 계속 나오는 것이 마치
화수분 같았다. 나중에는 고무 대야를 엎어놓았다. 새 물을 부우면서 계속해서 밟았다. 헌
물이 아직 이불에 배여서 새 물이 섞이는 것이니 헌물을 다 빼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밟고서야 흙탕물이 흰 물이 되고 투명한 물이 되었다. 이제 탈수다. 말이 탈수지 또 밟는
것이다. 밟은 뒤 고무 통을 누이고는 물을 빼고, 또 밟은 뒤 물을 빼고, 10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이제 물기가 똑똑 떨어지는 수준이 된다.
그러면 엄마와 함께 힘을 합쳐 이불을 들쳐 매고는 빠른 걸음으로 옥상으로 향한다. 햇살이
강할수록 마음도 상쾌하다. 빨래 줄을 걸레로 잘 닦고는 이불을 매단다. 탱탱했던 줄은 축
늘어지면 지면 가까이까지 이불을 내려놓는다. 기지개를 펴고 주변을 살펴본다. 옥상 마다
빨래들이 가득이다. 다들 햇살을 보고서 빨래를 결심했나 보다. 하긴 아무리 내가 원해도
하늘이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이불은 여전히 눅눅하고 쾌캐한 상태로 있어야 하니까.
날씨도 허락하고 나도 실천했으니 이불이 상쾌하게 뽀송하게 잘 마를 것이다.
때가 왔으면 내가 실천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