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보면 신랑 페트루키오가 신부 케이트에게 하늘의 해를 보고 달이라고 우기는 장면이 나온다. 상대를 길들이려는 남녀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흥미 있는 내용이지만 '해'와 '달'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인다는 자체가 놀랍고 재미있다.
해가 달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도 밤낮이 바뀐 듯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그날 난 학교에 다녀와 잘 놀다 낮잠에 푹 빠졌고, 일어나자마자 급히 세수를 하고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을 맛있게 먹었다. 워낙 단잠을 자고 난 후라 다음 날 아침인 줄로 착각한 거였다.
사태를 파악하고 빙그레 웃으시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차 다니는 횡단보도도 자신 있게 건너고 학교 앞의 신기한 문방구도 지나치며 교문에 들어섰는데 이상했다. 애들이 없고 너무 조용했다.
교실문들도 닫혀 있었다.
어린 나는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하늘에 뜬 해를 따지기라도 하듯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공부 잘하고 왔니?" 하고 엄마가 크게 웃으며 나를 꼭 껴안아 주시는 게 아닌가?
엄마의 웃음에 어안이 벙벙했고, 퇴근한 아빠랑 시청 앞 불꽃놀이를 보러 가서도 '해가 갑자기 어디로 숨어버리기라도 한 듯' 하늘을 자꾸만 살폈더랬다.
나중에 아동 발달 단계에 대한 책을 보다가 '여덟 살쯤 되어서야 밤낮에 대한 시간개념이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뜨는 해'와 '지는 해'가 구분이 안 간 어린 시절 나의 실수는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때를 구분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준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사춘기 아이들을 보고 부모가 "저 아까운 시간에 공부 안 하고 빈둥대다 곧 후회하게 된다."고 조바심을
내도 아이들이 갖고 있는 미래라는 시간개념은 어른과 다르다고 한다.
'코리안 타임'이란 불명예스러운 한국인의 시간 개념과 '스케줄' 관리가 몸에 밴 미국인과는 분명 감각적인 차이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나이마다 문화마다 시간 감각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동그란 시계가 두 바퀴를 돌며 하루를 구분해주는 건 똑같다.
또 '밀레니엄 시계'가 예수님 탄생을 기원으로 두 바퀴나 돌고, 지난 2000년도를 새 천년의 시작으로 작동한다는 사실도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해'를 '달'이라 우기고 '지는 해'를 '뜨는 해'라 우기는 우스운 현실이 행여 있을지라도, 창조주께서 계획하신 ‘나’라는 인생시계는 어김없이 돌아가니 '때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아직 시간 개념 약한 사춘기 아들을 너그럽게 이해하며 '꽃에 물주고 퇴비해서 관리하듯 하리라'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