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덤덤한 밥 한 끼by 펜끝 이천 리

한20221220덤덤한밥한끼.jpg









“제사 음식 하기 싫어. 내가 엄마 며느리야?”

또 엄마 앞에서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벌써 올해만 4번째다. 설날, 할머니 제사, 추석,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 제사다. 큰집에서 더는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친 모양이다. 하긴 큰집에서 근 30년을 했으니 할 말은 없다. 근데 넷째인 아빠가 자기가 다 가져오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일도 하나 안 도와줄 거면서 제사를 홀라당 가져왔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얼떨결에 종갓집 며느리가 되어 버렸다.

오늘 할아버지 제사다. 꼬치전, 동그랑땡, 배추전, 부추전, 산적 굽기, 조기 굽기…. 자리가 마르고 닳도록 앉아서 오후 내내 기름내 맡으면서 음식만 한다. 몸도 같이 튀겨지는 것 같다.
“엄마, 나 시댁에서도 음식 안 해. 명절 가서도 외식만 하고 오는데, 이게 웬 팔자에도 없는 제사야. 코로나 기간에 시댁에서는 6인 이상 집합 금지라면서 형님 댁과 서로 얼굴도 못 보게 했는데.”

엄마는 내 입에 배추전을 쑤셔 박으며 조용히 하란다. “왜 말을 못 하게 해. 그리고 왜 아무도 안 오냐고. 큰집 손주며느리는 연락도 없고, 작은엄마는 오지도 않고. 아빠는 떡 사 온다면서 여태 안 들어오냐. 회사 일찍 끝났다고 동네 친구한테 놀러 간 거 아냐? 이게 뭐야~ 할아버지 제사에 왜 나랑 엄마만 고생하는데~ 친척들한테 음식 주기도 싫다고. 작은 아빠는 맨날 늦게 오고, 아빠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놈의 밤 제사 고집부리고(무조건 제사 후에 식사). 다들 오지 말라고 해. 누구 이쁘다고 음식을 이렇게 거창하게 하냐. 우리끼리 조금만 해도 되겠구만.”
주둥아리가 이만큼 나와서 엄마한테 괜히 시비다. 엄마는 할아버지 드실 음식에 침 튄다면서 혼내셨다.

나는 엄마한테 물었다. 할아버지 제사 왜 하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그랬다. “며느리 되고서 할아버지 시골 계실 때나 큰집 계실 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못 해 드린 것이 그리 한이 된다. 엄마가 1년에 한 번 할아버지 밥 챙겨드리는 거로 생각해. 네가 수고스럽겠지만, 이해해.” 엄마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일평생 농사꾼으로 8형제 건사하시며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시다가, 말년에 중풍이 와서 크게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엄마는 바쁘다는 핑계로 옆에서 병시중 밥 수발 제대로 못 해 드린 것이 못내 가슴이 걸린 모양이다. 그래. 칠순이 된 며느리가 더 늦기 전에 할아버지 밥 한 끼 대접한다는데 토를 달 순 없지. 엄마의 덤덤하고 기름 냄새나는 사랑이 참 예쁘다. 울 할아버지도 넷째 며느리 짱이다! 하실 것 같다.



조회수
22,821
좋아요
3
댓글
1
날짜
12/20/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