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_정명석 목사

정명석 목사의 종교탐방…천주교, 개신교에서 통일교까지 확인

 -3줄 요약-
· 기독교복음선교회의 핵심 교리 ‘30개론’은 정명석 목사가 10대부터 21년에 걸친 성경 연구와 기도로 정립한 독자적 교리.
· 과거 종교 탐방 과정에서 통일교를 방문한 사실은 있으나 정식 입교·간부 활동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30개론은 이미 그전부터 정립됐다.
· 30개론과 원리강론은 일부 성경 해석이 유사해보일 수 있으나, 핵심 교리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다.


30개론 도표를 등에 매고 고향을 떠나는 정명석 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Jesus Morning Star)의 최고 자부심은 정명석 목사가 집대성한 선교회의 핵심 교리인 ‘30개론’ 입니다. 기독교 청년이었던 정명석 목사는 믿음과 실제 삶과의 괴리를 고민하며 10대 시절부터 성경 연구와 기도에 전념하며 21년에 걸쳐 하늘 앞에 자신의 인생을 다 쏟아 깨달은 시대의 진리를 ‘30개론’으로 정립했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1978년 6월 1일 서울에 상경해 본격 새로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짊어매고 온 ‘말씀 도표’는 30개론을 도식화한 것으로 마치 든든한 신형무기와도 같았죠. 이 말씀은 80년대 서울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선교회의 교세 확장이 시작됐습니다.

기존 기독교 교단이 성경 속 기적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면, 정명석 목사의 30개론은 듣는 이에게 성경을 보는 관점을 전환시키고 성경의 말씀과 예언들이 현 시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합당하고 합리적인 답을 제시해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시작된 종교 탐방

1970년대 초중반은 정명석 목사가 삼각산·남가좌동 등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며 연단을 거쳤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정 목사는 기도 중에 “다양한 교단과 신앙 현장을 직접 확인해 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에 1972년도부터 1975년까지 국내외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80여 개 교단을 탐방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전합니다.

하나님(이), '가보라'고, '어떻게 하는가 돌아다니라'고, '너는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가 모르니까.'(2019년 7월 23일 새벽설교 중)


정명석 목사는 둘째 형 정인석 목사가 공부하고 있던 대전 오정동 신학교를 비롯해 성결교단, 장로교단, 웨슬레 신학 계열을 비롯해 여러 기독교 교단, 이단으로 규정된 교단까지 직접 방문했습니다. 이는 특정 교단에 소속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각 교단이 주장하는 교리를 살피며 그 동안 정 목사 자신이 성경 연구와 기도를 통해 깨달은 말씀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당시 한국 종교계의 흐름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종교 탐방 과정에서 만난 통일교

 정 목사가 종교 탐방을 위해 거친 곳 중엔 ‘통일교(FFWPU,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도 있었습니다. 정 목사는 금산 통일 교회측의 요청으로 1975년 초 11일 단식 부흥집회와 설교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공식 석상에도 이 같은 경험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통일교 정식 입교나 교역 활동과는 무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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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회 반대자들은 1975년 3월 20일 작성된 정 목사의 통일교 입회원서를 근거로 정 목사가 통일교 교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통일교 행사에 처음 출석한 사람에게도 받는 문서입니다. 또한 필체도 정명석 목사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 당시 교회 관계자가 형식적으로 작성하였거나 인도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생님도 통일교의 전체 명단에 들어있답니다. 거기에 한 번만 지나가도 다 적어놓으니까. 통일교가 30만명이라 하는데 하이고 30만명 좋아하네! 무슨 30만명이 있습니까?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50만명이라 하는데 50만명? 찾아가는 사람마다 다 적어놓았다는 것입니다.” (1987년 12월 6일 설교 중)

더 나아가 정 목사가 1960년대 후반 군 복무 중 통일교에 입교하여 10여 년간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는 주장 역시 정 목사의 실제 활동 시기와도 맞지 않는 명백한 왜곡입니다.

또한 선교회 반대자들은 30개론이 통일교 원리강론에서 파생됐다며 폄하해왔습니다. 그러나 정 목사가 120개의 말씀 도표를 제작 시작한 때는 1973년으로, 통일교를 거쳤던 1975년대는 이미 말씀 도표를 제작한 후의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 통일교, 무슨 종교서 갖고 왔다.’ 하는데, 성경에 있는데 뭐하러 거기를 가. 성경에 있는데 뭐하러 거기 가서 배워. 나는 원리강론을 한 장을 읽어보지를 않았어요.” (2020년 04월 28일 새벽설교 중)

그리고 내가 도표를 끼고 있는 것을 보더니 보자고 했고, 자꾸 설명을 해달라고 해서 설명해 주니 계속 받아 적더라구요.  그들은 진리를 알기에 너무 놀라더라구요.

“우리 통일교만 있는 이것을 어떻게 당신이 갖고 있습니까?”
“이것은 성경에 있는 말씀으로 기독교도 다 갖고 있지, 당신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내가 베껴왔습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내가 구상했을 뿐이지, 원본은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히 해석해야 나오는 말씀입니다”하면서 자꾸 적고, 그리기에 내가 다음에 정식으로 공부를 배우라고 하면서 접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들 말씀을 공부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을 뛸 사람이 그 전의 사람보다 더 많이 알지 않고서는 그 다음을 뛸 수가 없습니다. (1998년 7월 29일 아침말씀 중)


선교회의 30개론과 통일교의 ‘원리강론’은 창조목적, 타락론, 부활 등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과 일부 용어 사용 측면에서 표면적으로 서로 유사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부분은 성경 해석 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성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역사를 위해) '전초를 해야지' 그랬습니다. 시대의 말씀을 전초하기 때문에 전초자는 말씀이 있는 거다.” (2006년 3월 19일)


길을 닦으려면 길을 먼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증거하려니까 할 수 없이 비밀을 주는 것입니다.”(1997년 11월 5일)

정 목사는 통일교가 일부 성경을 풀어낸 것은 맞지만, 이는 영으로 재림할 예수가 펼칠 본 역사를 위한 전초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30개론과 원리강론은 삼위일체론, 타락론 등 심층 교리에서 견해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구원의 핵심에 있어 원리강론은 가정을 이뤄 하나님 혈통으로 복귀하는 것을 강조한다면, 30개론은 말씀을 듣고 행실과 영혼이 하나님의 영적 신부로 변화하는 ‘휴거’에 두고 있어 패러다임이 현저히 다르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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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