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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Fact), 진실(Truth), 그리고 현실(Reality)by 펜끝 이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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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다. '진실(眞實)'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게 되어 있다. '거짓이 없는 사실'. 사실과 진실은 비슷한 것 같지만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껍데기에 그칠 수도 있지만, 진실은 반드시 알맹이를 포함한다.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사람을 치었다고 가정해 보자. 차로 사람을 치었다는 것은 표면적인 사실이지만, 그 진실은 불의의 사고일 수도 있고, 혹은 특정인을 겨냥한 계획된 상해나 살인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 또 어떤 학생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학생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시험지가 유출된 일이 있었고 그것이 나중에라도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 학생의 성적은 만점을 받았어도 영점으로 처리될 것이다.(실제로 수년 전 이런 일이 뉴스 기사로 난 적이 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 순간의 현상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과 같다. 물론 모든 서사를 다 알 수 있다면 그 전체가 사실이 될 수도 있다. 진실은 사실을 포함하지만, 사실은 진실을 다 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킨 채로 나타나는 양태를 저마다 자신의 수준 대로 인식하고 판단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진실은 하나인데, 사실은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으며, 현실은 제각각이다.

신약성경의 복음서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의 속주인 유대 지방에 파견된 총독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청원에 의해 예수님을 심문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지방 의회에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었는데, 유대인들은 '십자가형'으로 예수님을 처벌할 것을 탄원했다. 당시 유대인에게는 사형제도가 없었다.(요18:31) 로마제국에서도 십자가형은 법정 최고형으로서 국가 전복을 꾀하는 반역자들에게나 내리던 형벌이었다.

유대인들은 바로 그 점을 이용했다.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는 가이사(율리우스 카이사르)였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니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해달라고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신성모독 죄인으로 여겼음에도, 이를 교묘히 비틀어 마치 예수님이 가이사가 아닌 자신이 왕이라 주장한다는 뜻으로 로마제국의 반역자로 몰아세웠다.

이를 두고 빌라도는 직접 예수님을 심문하기까지 했으나, 그는 예수님의 죄를 찾아내지 못했다. 요한복음 18~19장에 그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나라(Empire)'가 빌라도에게는 곧 '로마'였지만,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심지어 빌라도의 아내는 사람을 보내어 남편에게 자신이 꿈꾼 내용과 더불어 예수님을 해치지 말라는 말을 전하기까지 했다.(마27:19) 그럼에도 끝끝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죄를 찾을 수 없었음에도 유대인들의 아우성과 탄원에 떠밀려 형의 집행을 방관하고야 말았다.

유대 총독 빌라도가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예수님이 죄를 지어서 기소되었다는 것이다. 죄목은 '제국에 대한 반역'이었다.(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 죄') 그러나 그가 발견해 낸 '진실'은 예수님이 자신을 로마의 왕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의 나라는 다른 세상(하늘나라)에 있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했을 때, 실제로는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마주한 '현실'은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른 유월절 특사를 예수님이 아닌 강도 바라바에게 허락해달라는 것과 더불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해 달라고 하는 강력한 원성과 압박이었다. 예수님에 대한 재판과 처형은 결국 법률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닌, 여론에 의한 것이 되고 말았다.

'진실'은 숨어있다. 그 진실을 둘러싼 '사실'이 낱낱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때때로 그 '사실'들은 '현실'에 의해 왜곡되고 와전되기도 한다. 그럴 때, '진실'은 가려지고 외면당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여론'은 실질적 법효력이 없음에도,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 다수의 대중이 취사선택하는(대부분은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실'들은 '현실'의 분위기와 공동체의 정서를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그 여론의 힘이 커지고 방향이 어느 한 쪽으로 집중될수록, 법정의 판사, 검사, 변호사는 영향을 받는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더불어 재판의 과정과 판결이 정의롭고 무결한 것인지 아닌지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음에도, 결국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그러고보면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著)'에 나오는 카이사르(공교롭게도 성경의 그 '가이사'다)의 말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 밖에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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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