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칼럼_연재칼럼_Three Cents Column

역사는 결국 '소통(疏通)'이다.

 

 

그 자체가 가진 의미를 넘어서는 특별한 요소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말'과 '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

‘말씀’, 즉 ‘언어’로 시작된 역사, ‘언어’, 곧 ‘말씀’으로 완성 될 것임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천지만물이 ‘언어’로 지어졌으니 그 안의 또 다른 피조물인 인간 역시 ‘언어’, ‘말씀’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사실입니다. 


사실 인간의 관념과 사상은 대부분 언어를 통해 형성 되며, 인간 서로간의 관계 형성도 언어의 사용, 즉 어떻게 ‘소통(疏通)’하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역사는 ‘말씀’의 역사이며, 곧 만든 이와 피조물간의 ‘소통’의 역사인 것이라 해석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나 중요한 ‘소통’은 대부분 ‘말’과 ‘글’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또한 진정한 소통이란 ‘말’과 ‘글’을 초월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는데, 먹고 있던 음식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당장 주인을 불러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무심하게 “예, 손님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네요. 맞습니다. 그래서요?”하고, 되묻는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의 ‘말’과 ‘글’은 그 자체가 가진 의미를 넘어서는 특별한 요소가 그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다.’는 말은 그 ‘사실(Fact)’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내가 먹은 음식에 이게 왜 들어가 있는 거야? 정말 기분이 나쁘다.’는 감성(Feeling)의 언어가 내재 되어있습니다. 주인에게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 사실’ 을 알려 주고자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분 나쁜’ 감성은 애초에 이 식당에 들어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먹으려 했을 때 정당한 값을 치르고, 그 대가로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자’ 하는 ‘욕망(Want)’을 채우고자 했음에서 좌절 된 것에 기인한 것입니다. ‘원했던 바’를 얻지 못 하고 애초의 기대가 어긋나게 된 것에 대해서 언짢은 감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만이 가능한 소통

같은 번개소리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내 죄 때문에 하늘이 야단하시는 것이리라.’ 두려워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이제 내가 너와 함께 해 주마’ 큰 용기를 불어 넣는 하늘의 음성이라 여겨 힘을 얻게 된다 하셨습니다. 

평소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그 ‘감성’이 틀리고 ‘욕구’가 다르기에 같은 ‘언어’를 들어도 서로 그 해석이 다르다 말씀 해 주신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소통은 전하고자 하는 ‘말’과 ‘글’ 속에 담긴 화자(話者)의 ‘감성’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화자의 진정 ‘원하는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에서 비로소 제대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나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개념을 통해 ‘말’과 ‘글’로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할 수 없다고 주장함이 이와 같습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이라는 곳에서 설법하던 중, 갑자기 아무 말 없이 그저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모두들 어리둥절하고 있는 데 마하가섭(摩訶迦葉 )이란 제자만이 그 뜻을 깨닫고 은은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 합니다. 이로써 석가모니가 마하가섭에게 불교의 깊은 진리를 전수 했다 함에서 나온 표현이 바로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집어 들고 미소 짓다) 입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소통이란 그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고 ‘진정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완성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결국 ‘그’를 참으로 ‘사랑’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늘 말을 잘 알아들으려면 ‘하늘을 진정 사랑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월명동의 낙타바위, 성자바위. .
돌 들이 외쳐 증거하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겠고, 그 소리에 하늘을 향해 염화미소를 짓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조회수
6,883
좋아요
0
댓글
2
날짜
9/1/2014

다른 칼럼의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