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절실한 자가 감탄한다
지난주 세푼칼럼에서 ‘절실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절실할 수’ 있을까요?
3년을 아르바이트하며, 아껴 모은 돈으로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본 사람과 부모가 ‘빈둥빈둥 노느니 여행이나 가라’고 던져 준 용돈을 받아 그랜드 캐넌을 본 사람의 ‘감탄’이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평생에 이런 감동이 없었다. 나도 그랜드 캐넌 같은 위대한 인생이 되어야지. . .’하는 결심한 사람과 ‘뭐 나름 볼만하던데...’하고 마는 감탄의 차이는 바로 ‘절실함’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절실’하면 ‘감탄’을 할 수 있고, ‘감탄’하면 ‘절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결된 것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감탄’으로 감사와 사랑을 하늘 앞에 돌린 정명석 목사
사실 정명석 목사께서 가장 잘하시는 일 중 하나가 성삼위 앞에 ‘감탄하기’입니다.
이 같은 ‘감탄하기’는 잘 ‘알기’ 때문에 ‘절실’하고, ‘절실’했던 일이기에 관련한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는 ‘감탄’으로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금주 말씀에도 한반도의 위급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토록 ‘절실’하게 기도하셨고, 절실하게 기도하셔 그 응답을 받게 되셨을 때 뜨거운 ‘감탄’으로 감사와 사랑을 하늘 앞에 돌려 드릴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비단 이 일뿐이 아닙니다.
“와~ 알고 보니 백보좌 형상이었네요.”, “와~ 귀뚜라미를 보내셨네요. . .”
매주 말씀에 ‘감탄’의 사연이 빼곡히 채워져 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연 하나하나에 깊이 감탄하니, 사연마다 감동의 대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선교하는 해, 선교 활성화의 관점으로 적용해 보면 선교 활성화에 있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감탄’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꾸어야 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감탄하는 인생이 되길 ...
우리 사는 사회 전반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탄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왜 우리 사회에 ‘감탄’이 갈수록 사라져 가는 걸까요?
‘절실’함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감탄하려면 ‘절실’해야 하는데, 그만 그만 먹고 살만하니 절실한 게 없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선교가 안 되는 교회들은 새로운 생명이 와도 ‘감탄’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때까지의 수많은 사연들을 포함하는, 그 인생 전체가 온다는 대(大) 기적인데 이를 보고도 감탄을 않는다는 것입니다.
137억년 전 화석이 발굴되면 세계가 감탄하며 난리가 날것이나, 137억년 성삼위와의 사연이 깃든 산 사람이 우리 교회에 걸어 들어오는데 감탄을 않는 것입니다. 사실 137억년 전 헤어졌던 애인을 찾은 것과 같은 큰 사건인데 말입니다. ‘생명’에 대해 감탄하지 않는 교회에는 결코 생명이 모일 수 없을 것입니다.
전 교인들이 생명들을 향해 '감탄'하는 교회가 된다면, ‘감탄하고 싶고’, ‘감탄 받고 싶은’, ‘감탄이 고픈’ 현대인들이 절로 모여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감탄하는 정도가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가늠할 기준일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사명의 크기를 결정하는 잣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감탄하고 감탄하십시오. 우리는 아무리 ‘감탄’해도 부족한 대감동의 역사를 빚진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