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왜 답답했던가?’
"답!" "답!" 하니 (답을 찾으려 하니) ‘답답’했던 것은 아닐까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답’이 넘쳐 나 오히려 혼란스러울 지경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고,
더 나아가 정말 혼란스러울 것 조차도 없는 명확한, 인생의 보석 같은 답을 제시해 주시는
위대한 '말씀'이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선교회인데 왜 여전히 “답!””답!”했을까요?
세계적인 언론사의 기자 출신인 프랭크 세스노는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해당 되는 질문을 찾아 묻지 못 함에서 기인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 혹자는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에 대한 정의로 ‘오랜 역사, 수 많은 질문들 속에서
나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적절한 설명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정작 우리는 '질문 하지 않음, 질문 할 수 없음'으로 인해 풍부한 답들 속에서 ‘답답’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깊어 집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20여년 길고도 험난했던 수련생활을 통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했고(성삼위 하나님과 본인 스스로에게),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 진 ‘소명(召命)’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깨달은 것이 답’이었습니다.
분명한 소명을 확인 한 그 후 이제는 그 사명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또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목격하였던 바 같이 혈혈단신 상경을
하시고 시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목회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는 ‘이 사역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룰 것인가?’ 질문하셨으며 이에 대한 ‘답’으로 ‘육 평생, 영 영원한 천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시고,
'온전한 변화'를 통해 인생들이 그 실현을 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 해 가고
계십니다.
뿐 아니라 매주 주일말씀 통해서 '기도로 끝없이 성삼위께 질문'하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설교자'이자 동시에 능숙한 '질문자'십니다.
아니 어쩌면 (성삼위를 향 한)능숙한 질문의 기술이 그를 훌륭한 설교자로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위대한 질문이야말로 위대한 해답의 산실(産室) 입니다."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그 질문이 ‘명확’하면) 그 때부터 ‘정답’을 찾아 나설 수 있으니
‘희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뒷받침 된다면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답을 찾게 되니
그 때가 되어서 ‘감사와 기쁨’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을 해야 '희망'이 생기고, 답을 찾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새 해는 '질문하기'로 한 해를 열어 가 보면 어떨까 제안
해 봅니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이 한 해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온전히 변화 되었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진정 ‘나의 일’을 찾고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위대함’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더 나은 구원을 위해 어떤 부분을 더 변화
시킬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