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충분히 넓고 얇은 종이가 있어 반으로 접어봅니다.
이러면 두께는 두 배가 될 것입니다.
똑 같은 방법으로 50번 정도 접게 되면 이 종이의 두께는 어느
정도 될까요?
10cm 정도라고 답하였다면 아마 정답에 놀라 실지
모릅니다.
휴리스틱(heuristics) 인생
이 종이의 두께는 무려 1억만km(지구와 달 사이 거리가 38만km)를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뇌는 우리 몸 중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기관입니다. 너무 많은 일을 하기에 웬만한 일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체계적이면서 합리적으로 처리하기보다 과거의 유사한 경험이나 기존의 지식을 기반으로 ‘어림짐작’하여 답을 내 버립니다. 이를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합니다.
이런 휴리스틱으로 인해 ‘정답’과 엄청난 격차의 ‘오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뇌의 특성이 삶 전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우리 네 인생살이에 있어서도 인생의 ‘정답(참 된 진리 말씀, 道)’에 기반 하지 않은, 평소 길 들인 대로(맛 들인 대로, 기존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살기가 쉽다고 하셨는데, 이를 ‘휴리스틱’ 인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맛을 잘 들이고 길을 잘 들여야 되며, 잘못 맛들이고 길들이면, 삶에서 오답(10cm 와 1억만km의 차이)을 내어 실패하게 되고 영원한 고통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새로운 위협, 인공지능(A.I)
최근 인공지능 로봇이 정식으로 시민권을 부여
받은 사실이 기사화 된 것을 봤습니다.
인공지능은 휴리스틱이 없습니다.
수많은 데이터, 팩트(Fact)에 기반 하여 객관적인, 말 그대로
‘정답’을 내 놓습니다.
‘정답을 찾아내는 일’에서 만큼은 이미 인류를
월등하게 넘어서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로써 많은 일자리를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가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곧 ‘현실’이 될 듯합니다.
인류가 여전히 인공지능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는 ‘질문하기’가 될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도 ‘답’을 금방 찾는 인공지능도
‘질문’을 하지는 못 합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질문까지 하게 되면 정말
인류는 ‘멸망’할지 모릅니다.
인류 멸망을 다룬 거의 대부분의 공상과학
영화들은 인공지능(로봇)이 스스로 질문하게 되면서 인류 멸망이 시작
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인간의 노예가 되어 그 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
“이 지구가 아름답고 쾌적하게 지속적으로 유지
되는 것에 가장 위협이 되는 종은 무엇일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 인류를 멸종시키려 한다는 것은 매우 익숙한
시나리오입니다.
다행히 로봇(인공지능)이 스스로 질문하게까지 만들기는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하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질문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류의 ‘질문하기’
능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주 유의미한 기술이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질문, 그리고 확신
인생살이에 ‘정답’을 찾으려면, 영육이 빛나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질문을 해야 합니다.
‘과거(기존)의 말씀들이 이를 실현하게 해 줄 수 있는가?’
곳곳에서 발견 되는 많은 현상들에서 ‘기존성’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정답을 알려 줄 것인가?’
정말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씀’(영육), 이 시대를 위해 성삼위께서 뜨겁게 전해주시는
살아 있는 ‘시대 말씀’이 필요 합니다.
'초변화'의 시대로 불리우는 이 때,
'땅'의 근간이 흔들리고 해, 달, 별들이 떨어져 말 그대로 천(天)과 지(地)가 개벽을 하는 이 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도저히 '말씀'을 안 주실 수 없는 그런 때가 이 때입니다.
그러하니 '말씀'을 찾아야 하고 혹 그러한 말씀을 접했다면 또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이 시대를 향한 위대한 하늘의
메시지가 틀림없는 것 인지?’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확신’을 얻어야 합니다.
그 ‘확신’을 ‘무기’삼아 온갖 ‘옛 것들’(비진리와 악평과 세상)과 싸워 이기고,
‘확신’에 기반을 둔 ‘실천’을 통해 자기
육도 영도 더 빛나게 만들어 하늘의 귀한 쓰임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 선교회는 참으로 희망찹니다.
끊임 없이 스스로 하늘에 '질문'을 하시고, 또 질문하기를 가르치시는 분이 계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