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동서고금(東西古今) 모든 인생에 베푸시는 신의 가장 완벽한 평등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경구(警句)는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동시에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Memento mori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
네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
돌아보라, 지금 여기(우쭐대며)서 있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신(神) 앞에서의 겸허를 종용하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Carpe diem 지금을 즐겨라, 지금에 집중하라....) 혹은 현세의 부귀, 명예 따위는 모두 부질없는 것이니 헛된 욕망을 버려라는 메시지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분명한 ‘결론’을 이미 알고 계속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결론’에 이르기 전 그 ‘과정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새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최근 청소년들이 PC방에서 게임에 빠져있거나 미디어 중독에 빠지는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왜 그럴까?
많은 이유 중 하나를 들자면 그들은 ‘감탄’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게임을 하면서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에 몰입하면서 “와우!(Wow)”하고 저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는 순간(Wow Moment)을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단 청소년뿐 아닙니다. 성인들이 맛집 탐방에 빠지고 국내외 여행 매니아가 되는 것, 역시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조예(造詣)가 있어 에펠탑의 아름다운 건축 구조학적 미(美)를 느끼면서 “와우!”를 하든 아니면 문외한으로 그저 내가 에펠탑을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와우!”를 하든 ‘감탄’하고 싶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프랑스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창조주께서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천지 만물을 지으신 이유도 이 ‘와우 모멘트’(심히 좋았더라...)를 경험하고자 하심이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 해 봅니다.
‘메멘토 모리’ 이 분명한 ‘결론’을 정말로 알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잡아’(카르페 디엠) 부귀, 명예 따위와 맞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이 ‘순간’들을 ‘와우 모멘트’로 바꿔 나가는 것에 집중하겠노라 다짐해야 합니다.
‘와우 모멘트’를 늘려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 그대로 ‘여행’과 같이 일상을 벗어난 이벤트, 평소 하지 않던 일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이벤트적 요소가 있고 외부적 요인에 기인하는 ‘감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더욱 본질적인 것으로 ‘나’라는 고유의 존재가치에 관한 내적 요인에서 ‘감탄’요소를 찾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와우 모멘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저들과 똑같은 숫자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쓰게 하소서’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 프랑스)의 시의 한 대목이라고 합니다.
이 시에서 ‘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똑같은 숫자의 하나’가 나옵니다.
다시 말해 ‘나’와 ‘70억명 중의 한 명’을 대비하는 것으로 ‘대중’과 차별화된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이백(李白, 701 ~ 762 중국 당나라)도 그의 시(장진주, 將進酒)에서
‘天生我材必有用 - 하늘이 ‘나’를 내셨음은 반드시 쓸 데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노래했는데...
‘인류 전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닌 오직 단 한 사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고유한 목적을 ‘나’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혹은 숭고한 사명 의식이 발현된 시가 아닐까 굳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봅니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구나‘ 라고 했고, 예수께서는 ’나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이심을 주장하셨습니다.
‘똑 같은 숫자’들...속에 묻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시(‘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이 겪은 감사와 사랑의 사연, 그리고 그로 인해 올려 드려야 할 영광)로 단, 한 분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읊어 내는 순간이야말로 바로 ‘와우 모멘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주여 오직 '나'이기에 쓸 수 있는 '나'만의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오직 당신 앞에 써 올리게 하소서’
(2022년 6월12일 정명석 목사님 주일 말씀 ‘하나님과 성령님께 감사 사랑 영광’에 따라... 주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