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칼럼_연재칼럼_Three Cents Column

‘마지막’을 결정한 자


 

입체적 인물의 전형(典型) 베드로
베드로는 참으로 입체적 인물의 한 전형(典型)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니 나를 따르라”

순간 받은 감동으로 그물(평생의 직업)을 집어 던지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내가 어디로 가오리까?’ 고백까지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로마군에 끌려가는 예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서는, 스스로 자신이 예수의 제자임을 세 번씩이나 부인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여태 받았던 성령의 감동을 넘어 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내 인간적인 죄책감에 슬피 울며 통곡을 했고, 그 뒤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독방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다시 갈릴리 바다 어부로 돌아가야 할 자신의 삶이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까지 목격하고서는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까지 변함없이 ‘자기’의 길(반석, 흔들리지 않는 이 기반에 신역 역사가 세워짐)을 가게 됩니다.
 

직선(直線)이 가진 속도와 힘
직선은 임의의 두 점을 잇는 무수히 많은 점을 잇는 최단거리를 표시한 것입니다. 간결하고 명확하여 그것이 갖는 ‘속도’와 ‘힘’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직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까지 목격한 베드로는 이제 ‘무엇으로 살다가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현재 시점에서 마지막 시점(두 點)까지 결정한 베드로는 이제 더는 머뭇거릴 것도 없는, 다른 것을 확인하기 위한 방황도 필요 없는, 그래서 로마의 십자가에까지 거침없는 ‘직선’을 긋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삶의 마지막 모습까지 결정한 자. 그들의 삶이 갖는 간결하고 명확함은 그 속도와 힘이 옆에서 지켜만 봐도 느낄 수 있을 지경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삶의 마지막 모습을 결정한 바울의 삶이 그러했고, 세상에서 가장 성삼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결정한 정명석 목사님의 삶 또한 그러합니다.


자신이 결정한 그 길을 묵묵히 가라
여러분들에게는 아직 확인이 덜 된 것이 있습니까? 더 머뭇거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 것이 없이 ‘나의 마지막 모습’이 명확히 그려진다면 이제 직선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단, 정명석 목사께서는 생활하다 보면 여전히 죄가 생기고, 고민도 쓰레기 쌓이듯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간결하고 명확하게 올곧게 살 수 있도록 매일매일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역설하셨습니다. 직선의 삶은 한 번의 각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하늘 뜻대로 살기로 했다고 오직 하늘에 모든 것을 떠맡기듯 하는 삶 또한 문제의 삶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맹목적이고 막연하게 사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사랑해야 할 배우자를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 사랑해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악착같이 ‘자기’가 정한 그 길을 자기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가는 직선을 긋듯 가는 그들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행하라 말씀하신 것. 그것을 행하는 것이 기적이라고 분명하게 정의 해 주셨습니다.

내 삶의 마지막 모습까지 결정한 자

비구름을 두려워 않는 독수리처럼, 천둥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호랑이처럼 그저 그렇게 자기의 길을 스스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 위에 성삼위의 위대하심이 덧입혀지게 될 것입니다.




조회수
5,501
좋아요
0
댓글
5
날짜
4/5/2016

다른 칼럼의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