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칼럼_연재칼럼_Three Cents Column

‘대한다는 것’ 그 인식론과 낯설게 하기

‘아이스크림!!’ 이라고 하면 ‘달콤하고 시원한 것’으로 반갑게 ‘대하는’ 사람이 있고, ‘이(齒) 시리게 하고 살찌게 하는 것’으로 부담스럽게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환경이든 ‘인식’하는 대로 그것을 대하게 됩니다. ‘인식하고 그대로 대하는 것’을 심리학적 용어 한 단어로 ‘표상(Representation)’한다고 합니다. 이는 영어의 RE(다시), PRESENTATION(드러내다)을 합친 단어로 나의 머릿 속에 기존에 저장되어 있던 ‘이전의 것들’을 다시 꺼내는(再現)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표상’이란 우리가 과거에 시각,청각,촉각 등을 통해 감각적으로 경험했던 것이나 학습을 통해 알게 되었던 정보들이 내 머릿 속에서 하나의 상(像)으로 그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스크림을 ‘달콤하고 시원한 것’으로 대하는 사람은 혀를 통해 이전에 느꼈던 달콤하고 시원한 감각으로, ‘이(齒) 시리게 하고 살찌게 하는 것’으로 부담스럽게 대하는 사람은 이 시린 경험을 통해 각각 그리 대하게 된 것이니, 결국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 지식과 정보의 여하(如何)함에 따라 사물, 환경은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표상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든 환경이든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 등을 다시 꺼내는 과정을 통해 결정 된다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전의 것들’ 이 그대로 꺼내진다는 것, 그리고 이 ‘이전의 것’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旣存) 것들로 내가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라 이 전의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되었다.”는 표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기존의 것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해 주신 설교 말씀 중에 한 예로 ‘감옥’하면 대부분 안 좋은 '경험, 정보'와 관련되어 있는 곳으로 대표되는 환경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떤 이는 이 곳에 처해 있게 되더라도, 이곳은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깊이 기도에 몰두하고 성삼위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더 나아가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곳'으로 대하고 그렇게 쓰기도 한다 하셨습니다.


결국 내가 가진 ‘이전의 것들’에 속박되지 않고 현재 내가 처한 이 상황을 ‘어떻게 대하고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이전의 것’들은 바꿀 수 없지만 현재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하는 것은 나의 의도(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의도)에 의해 지금 당장 ‘변화’시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 꼭 필요한 것들 중 하나가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입니다. 


거울을 보는데 ‘이 전의 것들’ 내가 못 생겨서 왕따 당했던 경험, 못 생겼다고 놀림 받았던 것들만 꺼내어 표상하면 여전히 못 생긴 내 모습이 그대로 거울에 비춰집니다. 

이것을 ‘지금’ 바꾸라는 말입니다.
거울을 보되 여태와는 다른 시각으로 ‘나는 얼굴이 못 생겼다’가 아니라 자세히 보니 ‘매우 개성 있고 독특하게 생겼다.’고 스스로 ‘낯설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 ‘낯설게 하기’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바로 ‘변화’가 시작 될 수 있는 전제조건 즉 ‘부활’과 ‘휴거’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낯설게 하기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차원에서도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새로운 시대 변화가 시작 되는 때에도 꼭 낯선 이론과 낯선 인물이 등장하고 이것이 새 시대를 주도하게 되는데, 이 당연한 ‘낯섦’의 출현을 오해하고 ‘잘못 된 것’으로 받아 들이기가 쉽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 ‘낯설게 하기’는 현재 시점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나 스스로 나에 대한 낯설게 하기를 할 필요도 있으며 낯섦에 대해 뛰어들어 확인하는 열린 마음과 용기도 필요한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 한 대로 그리 대하고 그리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 운명이 달리 결정 됩니다.

그러니 내게 이미 '주어진' 환경을 두고 탓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낯설은 섭리사의 그 날 밤 그 말씀이 웬일인지 나를 나를 못 가게 하네"


조회수
5,884
좋아요
0
댓글
4
날짜
6/9/2016

다른 칼럼의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