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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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知味)의 계절

너무나도 완연하게 ‘가을’입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독서의 계절...


떨어진 소화력치고 식욕이 는 것이 사실이고 동시에 오랜만에 책을 펼쳐 읽기까지 합니다.

제대로 가을을 타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는 금세 늙는데 배움을 이루기는 어렵도다(少年易老學難成)’

고전(논어)의 명구(名句)들이 이제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와 꽂힙니다.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 배워 알아야 할 것이 이미 많은데 시대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온고(溫古)하지도 못 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또 배워야(知新)하는 상황이다 보니 배움을 이루기는 어느 때 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모든 생명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무수한 은혜 중 한 가지만 거둬가셔도 모든 생명은 단번에 소멸할 수 있다는 것,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그 끝에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이 한 가지를 제대로 알고 깨닫는다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게 되는지’ 이 모든 것에 대해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명확한 진리를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말씀, 道)’가 왜 현실에서 밝히 드러나지 못하며, 제대로 실현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공자(孔子)는 이를 두고 ‘(자칭)지혜롭다고 하는 자는 도(道)에 지나치고(過道), 어리석은 자들은 감히 도에 미치지 못함(不及道)’이 그 원인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깊은 공감이 되는 내용입니다.


필자는 이 '과도'(過道)와 '불급도'(不及道)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굳이 꼭 합당한 도, '중도'(中道) 라고 표현을 해 보겠습니다.

('中'은 '無過不及' 과함도 불급도 없는것이다 - 중용)


과연 과하지도 불급하지도 않은 '중도'(中道)는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으며 또한 '중도'에 오래 머무르며 실현까지할 수 있을까요?


‘모든 생명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무수한 은혜 중 한 가지만 거둬가셔도 모든 생명은 단번에 소멸할 수 있다는 것,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그 끝에는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

이 명쾌한 진리는 각 시대에 맞게 하나님께서 각 시대의 사람을 쓰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종의 시대에는 종 중에서 적임자를 선택하시어 이 말씀을 주어 외치게 하셨고 아들의 시대에는 아들을 보내서, 그리고 신부의 시대에는 그 사랑의 대상을 택하고 보내시어 ‘중도’를 깨우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대성으로 보자면 종이 아들처럼 굴면 과도(過道)이고 사랑의 대상 신부가 자녀처럼 행동하면 불급(不及)입니다.


시대에 맞는 '중도'도 중요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각 시대마다 잘난 사람들은 그 지혜로움(?)으로 과도(過道)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또 그 우매함으로  진리에 불급(不及)하기에 각 때에 맞는 ‘말씀(道)’으로 오신 ‘보낸 자(말씀)’를 영접할 수 없었고 그러했기에 그들에게 이 ‘말씀’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최근 정명석 목사께서는 ‘주를 영접하는 것’, ‘주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 이긴 자’와 같은 말씀으로 선교회 전체 차원에서 ‘(신앙의)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십니다.


새로운 시대의 ‘중도’(道)를 알고 접한 자 중에도 그 ‘말씀’을 가지고 자칫 자신의 지혜였던 것 같이 ‘과도’하거나 여전히 깨달음이 부족하여 ‘불급’한 자들은 분명히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해,

‘자신’과 ‘역사’를 뒤돌아보고 더욱 근신해야 할 이때.

특히 이 '가을 날'


저 자신부터 이 ‘진리’ 앞에 과하거나 아직 불급한 부분은 없는지 깊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식(過食)을 하는 사람도 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不及)도 음식의 참맛을 알기 어려우니 사람으로서 누구나 음식을 먹지만 그 맛을 아는(知味) 사람이 드물다고 탄식했던 공자의 말이 다시 한번 가슴에 와 꽂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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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9/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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