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뇌가 신을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신이 뇌를 만들었을까요?
금주 말씀에 나온 것처럼, 사람의 각 지체를 보면, 참으로 하나하나가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지체 전체의 핵, ‘각 지체’를 움직이는 것은 ‘뇌’입니다. 우리 지체 중에서 ‘뇌’는 가장 자립적이며, 자기 강화의 기능이 탁월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지체입니다. 그런데 ‘자립적’이며, ‘자기 강화 기능’이 강력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기능은 바로 ‘종교’ 기능입니다. 뇌의 기능과 종교의 기능은 그래서 매우 흡사한 것입니다.
뇌의 니즈(Needs), 세 가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뇌’는 어떤 '필요', ‘니즈(Needs)’에 따라 이 기능을 수행하는 걸까요?
뇌의 니즈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생명의 보존과 지속’, 둘째,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입니다. 뇌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또한 자신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 하려는 차원에서 ‘번식(繁植)’과 ‘안전(安全) 추구’에 민감합니다. 그런데 생명에 대한 안정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끊임없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갈망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익숙하고 편안한 ‘내 집이 최고’라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이 상반된 양상을 띱니다. 또 타자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위해 자신의 수준과 경쟁력을 제고 하려고 노력하고, 승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흥분을 느낍니다. 아주 비싼 자동차를 몰고, 고가의 시계를 차고, 고급 저택에 살면서 느끼는 쾌감은 뇌의 니즈를 충족해 준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니즈’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관점에서도 종교는 현실뿐 아니라 사후까지 이어 영원히 생명을 지속할 수 있는 영생(永生)을 제시하고, 당장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전혀 새로운 신(新) 세계(영계, 천국…)에 대한 비전을 부여하며, 내 종교가 최고, 이 종교를 선택한 나야말로 ‘신의 선택을 받았다(選民).’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만끽 하게 해 주는 최적의 장치가 됩니다. 말 그대로 ‘종교’는 ‘뇌’의 니즈를 가장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기능의 동질성’과 ‘니즈 충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은 ‘뇌’가 ‘종교’, 곧 ‘신(神)’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서 그러한 ‘뇌’의 니즈는 왜 형성되었을까 따져 봅시다. 뇌의 3대 니즈는 결국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고, 무엇인가(Newness)를 찾아가고자 하는 ‘갈망’이며, 끊임없이 자신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의지’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신(神)인 내가 너를 사랑하니, 부지런히 너의 수준을 높여 나를 이해하고,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의 존재로 변화되어 나를 찾아오너라. 영원히 나와 함께 하자!!” 하는… 설계하고 지은 이의 ‘의도(창조목적)’가 ‘뇌’에 새겨진 것일 수 있습니다.
‘뇌’,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생각’이 중요합니다
필자의 지난 칼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의 경이로움 (http://god21.net/Square/LearningCenter/threespoons/View/38516?page= )’에서 언급했던, ‘100번째 원숭이 효과’ 같은 것을 보더라도, 이 세상은 우연 발생적 출발에서 진화해 가는 과정의 산물로 보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고, 완벽하며 또, 무엇보다 개체 상호간의 불가사의한 ‘연결(네트워크)’이 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은 절대적 일자(一者, 지능적 설계자)의 치밀한 의도, 목적 하에 ‘창조’ 되었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아직은 유한한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 무한(全知全能)의 신의 경지를 헤아려 설명할 수 없을 따름입니다.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년? ~ 1274년)도 신의 놀라운 창조 사역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하면서 결국 전능한 신의 존재는 그가 내려 주신 ‘영광의 빛(성령, 은혜, 깊은 영감…)’을 받게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깨닫고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뇌’,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생각’이 중요합니다. 정교하게 뇌를 창조해 주셨어도, 내가 ‘생각’을 제대로 못 하면, ‘뇌’도 다 무용지물입니다. 신이 ‘생각’을 창조하신 이유는, 신의 의도를 깨달아, 제대로 생각하고 행함으로, 육도 땅에서 ‘신의 세계(천국)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고, 그 육의 삶을 ‘혼과 영’이 받아서 혼과 영 또한 하늘나라 형체(경쟁에서의 승리)로 변화하여, 구원의 과정(신을 찾아 신세계로의 여정을 쉬지 않는)을 거쳐, 휴거(온전한 사랑, 영원한 사랑의 세계로 완성)되어 신과 함께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내 생각이 신의 것과 일치되는 상태. 곧, 내 '생각이 신' 이 되는 그런 경지를 제시하신 말씀. 그래서 신과 인간의 관계, 창조의 목적을 통찰력 있게 집약한 ‘생각이 신이다.’는 말씀은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하늘 말’인 것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