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칼럼_연재칼럼_Three Cents Column

사람의 아들(人子)

최근 월명동 수련원에서 '한 사람'의 일상을 지켜 보다가 문득 필자가 어린 시절 성경 공부를 할 때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던 것이 떠 올랐습니다.

꼭 베드로는 안 되더라도 갈릴리 바닷가 군중들 중 한 명으로 '사람 낚는 어부'로 베드로를 불러 주시는 장면을 지켜 볼 수 있다면...
12제자는 아니었다해도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기적의 떡'을 맛 본 무리 중 하나가 되어 볼 수 있다면...  

예수께서 실제 사셨던 삶의 모습은 신약 성경 특히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소위 '공관복음'을 통해서 유추 해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리고 이 '공관복음'에 기반해 만들어 진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아는 '예수'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관복음'의 원본은 여태 발견 되지 않았고,
'역사적 사실'이 있은 지 수 십년이 지난 뒤 쓰여 진 것으로 알려 진 복음서들의 저자 역시 실제 예수의 삶을 현장에서 목격한 제자들이 아니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또한 '공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4개의 복음서가 전하고 있는 사실들이 서로 모순 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만 살펴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의 이야기를 구전으로 전해 들은 사람들 중 일부가 정리한 '글'과 그 글들의 '필사본'들이 여기저기 흘러 흘러 전해 내려 오다가
'정경'으로 채택 된 것이 오늘날의 신약성경이며, 그러하기에 신약 성서는 객관적인 검증 과정을 거친 'Fact'를 서술했다기보다 다분히 전하는 자들의 저술, 편집 의도가 반영 된 신앙 고백적 기록물이라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 '의도를 가진 구전'이란 것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다단계 과정을 거칠수록 더 보태어지고 과장 되어 지기 마련이라
예수가 메시야 임을 증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신'의 모습에 가까운 신화적 인물로 예수를 그렸을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스승을 위대한, 범접 하기 어려운 신의 아들로 만들고 싶었던 욕심에 아예 예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출현했다는 이른바 가현설( 假現說 마르키온파에 의해 주장)까지 나왔던 것은 이에 대한 반증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신약성서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예수의 위대성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제겐 전혀 없습니다.
역사비평론적 관점으로 성서를 봐야하는것은 예수의 참 모습을 조명하는 의의 외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상을 정립하는 것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화적 요소를 걷고 '사람의 아들(人子)'로서의 예수를 짐작 해 보자면 오랜 목수일로 몸은 다부지고 얼굴은 검게 그을렸을 것이고 배움이 부족하였으나, 하늘 말씀 전할 때의 그 위력은 하늘 권세를 제대로 전달해주었을것이고 소탈하고 해 맑은 함박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위트 넘치는 사람이었을것입니다.
외모에 있어서 헐리우드 영화가 그린 모습과 분명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나 훨씬 친근하고 인간다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육신 쓴 '인간'으로서 많은 한계에 갇혀 사는 우리들은 초월자로서의 완전히 차별화 된 존재를 기다려왔고 또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명석 목사께서는 '귀한 것을 모르고 산다'는 말씀을 통해 실상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이며,

특히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보낸 자'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잘 따지고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언제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배부르게 만들 수 있는 '신의 아들' 보다 함께 굶주리고 배고픈 고통을 나누는 가운데에도 그래도 무엇을 먹고 입을까 염려않고 오직 하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의 아들'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구원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필자의 어린시절 소망과 같이 '사람의 아들'로서 오직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가고 서며 일어 서고 앉는 '사람'을 볼 수 있기만 하더라도 이미 이 땅에 태어난 보람을 다 충족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히 그 삶을 따라 배워 나도 그리 살 수 있도록 도전하며 하늘 향해 전진 해 갈 수 있다면 가장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 그런 일이 되는 것입니다.



조회수
3,920
좋아요
6
댓글
5
날짜
5/25/2018

다른 칼럼의 최신글